명소 옆 숨은 1인치의 바다
강원 강릉 순긋해변
‘바다는 가끔/내가 좋아하는/삼촌처럼 곁에 있다/나의 이야길 잘 들어 주다가도/어느 순간 내가/힘들다고 하소연하면/“엄살은 무슨? 복에 겨운 투정이야”/하고 못 들은 척한다’(이해인 시인의 ‘바다는 나에게’ 중에서)
순긋해변을 처음 봤을 때였다. 북적대는 경포해변 옆에서도 순긋은 소란하지 않아 좋았다. 하루 종일을 물가에 주저앉아 있어도 귀가 맑았다고나 할까. 그만큼 사람 소리는 멀고 파도 소리는 가까웠다. 마치 이해인 수녀가 말한 삼촌처럼 살가워, 혼자 가만히 발 적시며 하소연하기 좋았다. 그게 4~5년 전이다. 물론 지금은 이곳에도 방문객이 늘었다. 한여름이면 600여 m 길이의 자그마한 해변에서 사람 소리가 난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여름이 무르익어 사람 제법 있는 날에도 이곳에선 결코 사람이 바다를 가리는 일 따윈 없다. 경포해변에 비하면 아직까지 한적해 조용히 머물다 가기 좋은 셈이다. 순긋은 물빛으로도 맑게 빛난다. 햇빛 듬뿍 빨아들인 날의 순긋이라면 더욱 찬란하다. 바다 조망 포인트는 순긋해변과 사근진해변 사이에 있는 ‘해중공원 전망대’. 이곳에 올라서면 작지만 탁 트인 순긋해변과 멍게바위로 아기자기한 사근진해변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몽글몽글 보들보들한 초당순두부
강릉에선 초당순두부가 ‘먹방’ 1순위다. 초당순두부는 강릉 초당동의 두부촌에서 만들어 내는 순두부를 말한다. 여기서 ‘초당’은 조선시대 삼척부사를 지낸 허엽의 호에서 따온 이름. 허엽은 허균과 허난설헌의 아버지로 유명하다. 대체로 응고제 대신 바닷물로 두부를 만들어 식감이 푸딩처럼 몽글몽글 보들보들한 것이 특징이며 현재 20여 곳의 순두부집이 성업 중이다.
붐벼도 재밌다, 격렬하게 재밌다
충남 보령머드축제
미끄럼틀을 타고 쏜살같이 내려와 진흙탕에 퐁당 빠진다. 순간, 시커먼 머드가 주위로 ‘파바방~’ 꽃술처럼 튄다. 한바탕 왁자한 웃음소리가 바다로 번진다. 미끌미끌 보드라운 진흙마당에선 첨벙첨벙 공놀이도 한창이다. 강한 헛발질에 ‘쭈욱’ 미끄러지는 사람도, 비틀대며 공을 몰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모두가 신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진흙이 가득 담긴 대형 머드탕. 이곳에선 몸이 깨끗하면 오히려 이상하다. 머드가 눈, 코, 입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시커멓게 묻어야 축제를 제대로 즐겼다는 증거다. 막 묻혀도 괜찮을까 망설여진다면? 걱정할 것 없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머드는 보령 해안에서 채취해 정제한 것이다. 천연 미네랄 성분을 듬뿍 함유해 피부에 활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령시에 따르면 혈액 순환 효과도 있다고 한다. 진흙에서 신나게 놀면서 건강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머드축제가 열리는 대천해수욕장은 바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육지에서 바다 멀리까지 걸어가도 종아리까지 파도가 출렁대 어린 자녀들과 함께 바다를 즐기기 좋다. 스카이바이크와 카트, 짚트랙 등 익사이팅 체험시설이 즐비한 것도 매력이다. 올해 축제는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보령해양머드박람회’라는 이름으로 열린다.
소름 돋도록 서늘한 보령냉풍욕장
이름 그대로 차가운 ‘바람목욕’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무연탄 생산탄좌가 있던 폐광을 이용해 만든 곳이라 30℃가 넘는 한여름에도 폐갱구 안쪽에서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찬바람이 쌩쌩 분다. 냉풍욕장의 연중 내부 온도는 10~15℃. 긴 팔 옷을 입어도 오싹한 한기가 느껴질 정도의 온도이니 입장 시 긴팔 옷을 꼭 챙기자. 올해 개장은 8월 19일까지며 입장료는 무료다.
바다 가운데서 고래의 등을 타고
인천 옹진 대이작도 풀등
언젠가 누군가 ‘풀등을 걷고 싶다’ 내뱉으며 살던 때가 있었노라 고백했다. 부지불식간에 딸꾹질처럼 튀어나오는 ‘풀등’에 늘 대이작도를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그에게 풀등은 바다사막이었으며, 밀물 때마다 솟는 한 마리의 고래였다고 한다. 대이작도는 그런 풀등을 볼 수 있고 배를 타고 나가 직접 밟아볼 수도 있는 섬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사리 때는 사승봉도 근처에서 소이작도 근처까지 무려 5㎞에 이르는 모래섬이 바다 위로 불쑥 드러나 고래 같아지기도 한다.
거기, 풀등 한가운데 처음 섰던 날을 기억한다. 바닥은 온통 물결무늬로 가득 차 신비로웠으며 흰 포말로 물러나는 썰물이 사방에서 출렁대 황홀했다. 밤사이 고래의 등을 타고 심해를 나는 꿈을 꾸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었다. 풀등 행(行) 탐방선은 작은풀안해수욕장에서 사전 예약 후 허가된 보트를 타고 갈 수 있고, 썰물 때만 출입이 가능하다.
풀등만큼 즐기기 좋은 바다는 또 있다. 풀등 탐방선 매표소가 있는 작은풀안해수욕장이다. 대이작도 유일의 캠핑장이기도 한 이곳은 큰풀안해수욕장까지 걷기 좋은 해안산책로가 이어지는 곳. 이 길에 있는 우리나라 최고령 암석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전망도 노을도 멋진 부아산전망대
부아산(159m)은 소문난 ‘풀등 조망대’다. 풀등뿐 아니라 대이작도 일대 바다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는 천혜의 바다 전망대다. 대이작도와 소이작도 사이 어항이 빚어내는 ‘하트’ 모양 바다도 이곳에서 볼 수 있고, 해 뜰 녘, 해 질 녘 노을도 이곳에서 볼 때 가장 찬란하다. 작은풀안해수욕장에서 정상까지는 도보 50여 분 거리. 부아산의 8분 능선까지 차로 올라 도보 15분이면 정상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