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동의 민들레
글 의정부교도소 대체복무요원 이바른
글 의정부교도소 대체복무요원 이바른
• 법무부의 시간은 간다. 교정시설에서는 유명한 어구이다. 교정시설에서 보내는 일상이 하루하루 비슷하고,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져도 결국 시간은 흐른다는 표현이다. 수용자 신분이었던 선배들과는 달리 이젠 대체복무요원으로서 교정시설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에게도 그 절대적인 시간의 법칙은 적용되고 있다. 길게만 느껴지던 3년이라는 복무 기간 중 1년 2개월이 흘렀다. 겨울에 맞이했던 의정부교도소의 첫 모습이 겹치며 벌써 두 번째 겨울이 지나 여름이 왔다.
• 지난겨울 내가 살던 남쪽 지방과는 달리 의정부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교도소 뒤에 있는 수락산의 설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처음에는 설레었지만 이젠 눈 내리는 날의 낭만은 없어졌다. 한밤의 눈송이는 우리에게 추가적인 업무를 주며 아침잠을 깨웠다. 넉가래로 눈을 치우는 것도 꽤 익숙해졌다. 눈이 오면 도로에 쌓인 눈을 빠르게 치워 줘야 한다. 굳게 닫혀 있는 교정시설에서의 ‘삶’을 위해선 외부의 출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매일 줄줄이 들어가는 식자재, 구매 물품, 생필품, 택배는 생활 유지를 넘어 단절된 수용자의 삶을 밖과 이어주는 커다란 끈처럼 보였다. 눈을 열심히 치우다 보면 겉옷 속으로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여전히 손발은 시렸다. 하지만 교정공무원분들의 ‘고생 많다’라는 말 한마디, ‘대체복무요원들 없었다면 큰일 날 뻔했어’라는 응원은 얼어 있던 우리의 손을 손난로처럼 녹여 줬다.
• 의정부교도소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4월 봄에도 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 눈은 아니다. 왠지 모르게 의정부 교도소에는 민들레가 참 많이 있다. 노란 민들레가 지고 하얀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날릴 때면 겨울에 이어 또 한 번 눈보라가 일어난다. 민들레의 꽃말은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대체복무가 도입되기까지 많은 수고와 노력, 항상 대체복무요원을 살피고 친절하게 교정시설의 한 가족으로 여겨주시는 교정공무원분들, 생활과 시설 개선을 위해 힘써 노력해 주시는 총무과장님,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줘서 정말 고맙다며 우리를 존재를 가치 있게 여겨 주시는 소장님까지. 내 마음에 날아온 한 줌의 민들레 씨도 활짝 꽃을 피운다.
• 지난 1년 동안 대체복무요원 생활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교정시설 내의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위성사진에도 표시되지 않는 보안시설이기 때문일까, 교정공무원의 헌신도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CRPT의 땀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부드럽게 수용자를 다루는 역할도 필요하겠지만 교정시설이라는 무대에서 이들의 역할은 그럴 수 없다. 수용자가 느끼기에는 가까워질 수 없는 대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교정시설 내의 질서를 위해서 이들은 항상 단호하고 냉철한 표정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들의 업무는 긴장감의 연속이다.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식당에 있다가도 못 다 채운 허기를 뒷전으로 하고 빠르게 달려간다. 검은색 모자와 제복이 영화 속 히어로처럼 화려해 보이지 않아도,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다.
• 이밖에도 모두가 잠들어 있을 시간에 야간 당직 근무를 서는 교정공무원, 각 사동과 작업장의 담당자들, 절대 뚫려서는 안 될 철문을 감시하는 담당자들 그리고 모두의 활력을 위해 주말에도 근무하시는 직원 식당 조리사분들. 미처 열거하지 못한 교정시설의 ‘언성 히어로(Unsung Hero, 칭송받지 못한 영웅)’들은 아직 무대의 뒤편에 있다. 외부에는 감춰져야 하기 곳이기에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이러한 노고는 언젠가는 빛을 받을 것이다. 고산동의 하늘을 뒤덮은 민들레 씨가 바람에 흩날려 외정문을 넘어 날아가듯 교정 가족들을 향한 민들레 씨앗이 국민들의 마음에도 안착되길 바란다.
• 아마 교정공무원들은 수용자들의 마음에도 조그마한 민들레가 자라나길 바랄 것이다. 물론 직접적인 마음의 표시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건강한 구성원으로서 다시 사회에서 성실하게 살아 주기를 희망할 것이다. 어떤 씨들은 땅에 정착하지 못하겠지만, 분명 어떤 씨는 뿌리를 내려 겨울이 지나 봄에 노랗게 꽃을 피우리라는 소망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교정인들에게는 이러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도 이제 교정시설의 한 구성원 또는 가족으로서 이런 따뜻한 마음으로 수용자를 바라볼 것이다.
• 대체복무요원들은 서로를 정겹게 부를 때 ‘대복이’라는 애칭을 사용한다. 700명에 가까운 대복이들은 2022년 1월 기준 전국 각지 14개의 교정시설에서 성실히 복무하고 있다. 비록 우리는 대체복무로 일컬어지지만 ‘대체 인력’이 아닌 교정시설의 필요 인력이 돼 가는 중이라 생각한다. 많은 교정 가족이 노란 민들레꽃이 활짝 피어나도록 좋은 흙이 돼 주는 것처럼, 우리도 그 일부가 되고자 곱게 알갱이를 연마한다. 다시 봄이 오면 고산동에는 하얀 민들레 눈이 흩날릴 것이다. 따스한 봄을 기다리며 글을 끝맺어 본다.
※ 이 글은 2021년 12월 대체복무요원을 대상으로 체험수기를 공모해 선정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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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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