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교정공무원의 남모를 고민
김재훈 교사 안녕하세요, 교감님! 햇살 좋은 날입니다! 오늘처럼 산 타기 딱인 날씨에는 늘 교감님이 생각납니다. 요새는 코로나19 때문에 통 가지 못했지만, 예전에는 전국 곳곳의 명산으로 약초 산행을 떠나곤 했잖아요. 그래서인지 문득 교감님이 뵙고 싶어서 이렇게 커피 한 잔 들고 찾아왔습니다. 함께 마셔 주실 거죠?(웃음)
이재영 교감 물론이죠, 김 교사! 안 그래도 날씨가 좋아서 몸이 근질근질하고 괜히 싱숭생숭했는데, 김 교사와 함께 어수선한 마음을 추슬러야겠군요. 김 교사가 무도 특채로 임용돼 광주교도소에 온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3년이 지났네요. 30대 중반에 교정공무원으로서 첫발을 내디뎠으니 늦깎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요즘 일은 할 만한가요?
김재훈 교사 사람들에게 택견을 가르치다가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야겠다 싶어서 국가직인 교정공무원에 도전했으니, 대부분의 순간이 즐겁습니다! 지금은 아시다시피 미결1팀에서 보호동에 온 수용자들을 관리하고 있는데요. 소위 문제 수용자들을 교정교화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늘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때때로 마음이 흔들려서 애를 먹고 있어요.
이재영 교감 어떤 것들이 이토록 강건한 김 교사를 흔들고 있나요? 모처럼 찾아왔으니 마음속에 담아 놓은 이야기를 한바탕 풀어놔 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마음이 후련해질 테지만, 내가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곁들여 볼게요.
김재훈 교사 수용자를 교정교화하려면 무엇보다도 수용 질서가 바로 서야 하는데요. 보호동에는 아무래도 흥분 상태에 놓여 있거나 다소 폭력적인 수용자가 많이 들어오다 보니 이들을 바른길로 이끄는 과정이 생각 이상으로 녹록치 않습니다. 때로는 마음이 어지러워서 일이 손에 안 잡히기도 하는데요. 교감님, 이럴 땐 어떻게 마음을 다잡아야 할까요?
주인의식으로 굳게 다지는 마음의 중심
이재영 교감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 수용자들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고 있군요. 사실 나도 그런 수용자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그럴 때마다 함께 일하는 선배들에게 고민을 이야기했어요. 그러면 선배들은 어김없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힌트를 건네셨죠. 그러니 김 교사도 선배들의 지혜와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세요. 더불어 모든 일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는 마음가짐도 중요하죠. 우리가 미결3팀에서 함께 일할 때 공황장애가 있었던 수용자를 진정시켰던 일을 기억하죠?
김재훈 교사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독거실에서 지내던 수용자가 갑자기 난동을 부리는 통에 함께 출동해서 겨우 진정시킨 뒤 전후 사정을 따져 보니, 공황장애 약을 제때 먹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죠. 그때의 경험 덕분에 정신질환을 가진 수용자의 복약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재영 교감 바로 그거예요. 그날 이후로 나와 김 교사 모두 수용자의 복약 관리를 더욱 신경 쓰게 됐잖아요. 당시에는 수용자를 진정시키느라 진을 뺐지만, 우리는 그 일에서 중요한 교훈을 얻었어요. 잘 살펴보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어려움 속에서도 그때와 같이 귀중한 무언가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반복되는 일상을 스승으로 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그곳의 주인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문장이 있어요. ‘어느 곳이든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지금 머무는 곳이 바로 참된 세계다’라는 뜻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인데요. 매 상황의 주인이 되면 적극성과 열정이 살아나고, 그 안에서 배움을 얻을 가능성이 커집니다. 김 교사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지만, 거기에 주인의식을 한 스푼 더한다면 어떤 일 앞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예요.
따스한 상부상조로 완생(完生)을 그리다
김재훈 교사 저는 평소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온몸의 긴장을 푸는데, 여기에 더해 모든 곳의 주인이 된다면 한결 안정적으로 수용자 교정교화에 나설 수 있겠군요. 교감님이 말씀하신 수처작주 입처개진, 잊지 않고 실천해 보겠습니다!
이재영 교감 그렇다고 너무 큰 부담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김 교사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거예요. 법과 원칙이 늘 우리 뒤를 든든히 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엄정하면서도 때로는 인자한 면모를 수용자들에게 보여 주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수용자들이 가장 잘 따르는 교정공무원이 돼 있을 겁니다.
김재훈 교사 안 그래도 스트레스를 쌓아 놓지 않기 위해 퇴근 후에는 취미활동을 마음껏 즐기고 있습니다. 요새는 텃밭 가꾸기에 푹 빠졌어요. 제가 뿌린 씨앗에서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제법 감동스럽기까지 하죠. 교감님은 요즘도 매일 만 보 걷기를 실천하고 계시죠?
이재영 교감 코로나19가 배드민턴, 산행과 같은 취미를 빼앗아 버렸잖아요. 걷기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심신의 건강을 유지할 수 없어요. 이제 상황이 많이 나아졌으니, 조만간 김 교사와 함께 예전처럼 약초 산행을 떠나야겠네요. 최근에는 자연을 좋아하는 성향을 십분 살려 산림기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어요. 정년퇴직이 3년 정도 남았는데, 착실히 준비해서 어엿한 나무 의사로 거듭나려고 해요.
김재훈 교사 벌써 은퇴 후의 삶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교감님이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요즘 상습적으로 규율을 위반하는 수용자를 어떻게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저에게 주어진 과제를 차분하게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언젠가는 교감님처럼 멋진 베테랑이 될 수 있겠죠? 앞으로도 지천명의 늦깎이 후배를 많이 도와주십시오!(웃음)
이재영 교감 물론이죠! 김 교사는 이제 나의 형제나 다름없는 후배인걸요. 조만간 함께 산길을 걸으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