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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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로 거듭난
‘프로 도전러’

가수 유빈

국내 최고의 소속사를 박차고 나와 자신만의 기획사 설립을 택했다. 걸그룹 멤버에서 래퍼와 배우로, 그리고 축구인으로. 돌이켜 보면 유빈의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었고, 매번 성공적인 변화를 이뤄 냈다. 그렇기에 그를 아는 사람들은 ‘CEO 유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강진우 사진 홍승진

13년에 걸친 성장의 여정

‘도전러’는 도전이라는 단어에 영어 접미사 ‘er’을 붙인 신조어로, ‘도전을 즐기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에 ‘프로’가 붙으면 그 의미가 한층 강화된다. 이렇게 완성된 ‘프로 도전러’와 유빈은 마치 블록처럼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 그 정도로 유빈의 연예계 생활은 크고 작은 도전으로 점철돼 있다.
2007년 원더걸스에 합류한 유빈은 멤버들과 함께 〈Tell me〉, 〈Nobody〉, 〈Be my baby〉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국민 걸그룹’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그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2015년 〈언프리티 랩스타2〉에서 뛰어난 랩핑과 중성적인 매력을 선보이며 뛰어난 실력을 갖춘 여성 래퍼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았다. 2017년 2월 원더걸스가 해체된 뒤에도 z유빈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10년 넘게 모든 걸 함께 했던 멤버들 없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언젠가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기에 마냥 두렵지만은 않았어요. 한편으로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저의 매력을 가감 없이 보여드릴 수 있는 음악을 착실하게 준비했는데요. 덕분에 2018년 6월 솔로 데뷔 앨범 〈도시여자〉와 타이틀곡 〈숙녀〉를 성공적으로 팬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었어요.”
유빈은 완성도 높은 음악성과 뉴트로 특유의 ‘세련된 촌스러움’을 겸비한 〈숙녀〉를 발판 삼아 단숨에 ‘시티팝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숙녀〉는 ‘컴눈명(다시 컴백해도 눈감아 줄 명곡)’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이후에도 〈Thank U Soooo Much〉, 〈무성영화〉 등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음악적 색깔을 켜켜이 쌓아 나가던 그는 2020년 초 중요한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소속사와의 계약 종료를 앞두고 재계약과 독립 중 하나를 택해야 했던 것. 유빈은 고심 끝에 지금껏 가보지 않은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한 명의 아티스트를 넘어 3년 차 CEO로

2020년 1월 25일, 유빈과 JYP 엔터테인먼트가 결별을 고했다. 서로를 향한 축복만이 가득한, 그야말로 아름다운 이별이었다. 계약서를 넘어선 이들의 애틋한 관계는 이후 유빈의 행보에서도 물씬 느낄 수 있다. 그는 원더걸스 데뷔 일인 2월 10일에 르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전 소속사와의 계약 종료일을 거꾸로 뒤집은 5월 21일에 독립 후 첫 번째 신보 〈넵넵〉을 발표했다. 함께 보낸 지난 13년에 대한 고마움이 녹아 있는 나름의 이스터 에그(Easter egg)다.
“재계약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JYP는 우리나라 최고의 소속사니까요. 하지만 그곳에 계속 남아 있거나 다른 회사와 계약한다면 아티스트 이상의 무언가를 이루기 힘들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간직한 ‘나만의 회사를 운영해 보고 싶다’는 꿈도 독립을 결정하는 데 한몫했죠.”
대표가 되자 오로지 아티스트로서 무대에 섰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온갖 업무를 하나하나 직접 처리하며 두루뭉술했던 소속사에 대한 고마움이 갈수록 구체화되고 선명해졌다. 자신을 믿고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 양어깨에 가득 앉았다. 그러나 유빈은 무게에 짓눌리지 않았다. 새로움을 좋아하는 성격과 꾸준한 성장의 기쁨, 자신의 발전이 주변에 미치게 될 긍정적 영향을 되새기며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고, 어느덧 CEO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작년 10월에는 MZ세대 여성을 타깃으로 하는 패션 브랜드 ‘데비어퍼’를 론칭했어요. 데비어퍼는 ‘함께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을 뜻해요. 착용자의 기분이 좋아지고 그 긍정적인 기운이 널리 퍼져 나간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아서 이런 이름을 붙였는데요. 다행히 데비어퍼의 중성적인 매력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답니다.(웃음)”

교정공무원과 함께 펼친 꿈의 날개

“배움은 평생이다.” 아버지는 어린 딸에게 줄곧 말했고, 딸은 그 가르침을 잊지 않았다. 3년째 대표로서 훌륭하게 회사를 이끌고 있지만, 유빈은 여전히 세상 모든 것에서 무언가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물론 그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낯섦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나아간다. 후회를 줄이기 위함이다.
“새로움을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낯섦이 두려운 건 아닌데요. 그럴 때마다 저는 도전하지 않음으로써 얻게 될 후회를 떠올려요. 어떤 일이든 하고 후회하는 것과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은 천지 차이잖아요. 실패하더라도 해보면 적어도 그 일이 나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잖아요. 이미 실행에 옮겨 봤으니 미련과 후회도 적을 테고요. 지금껏 이런 생각으로 과감하게 여러 도전에 임했던 것 같아요.”
도전에 대한 유빈의 이야기는 교정공무원에 대한 사색으로 연결됐다. 어릴 적에는 제복을 입고 교정시설을 지키는 교정공무원이 막연히 무섭게 느껴졌지만, 성인이 되고 보니 교정공무원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교정공무원이야말로 매 순간 수용자 교정교화라는 매우 중요한 과제에 도전장을 던지는, 사회의 안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진정한 프로 도전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누군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이번 기회를 빌려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와중에도 수용자 교정교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전국의 교정공무원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교정공무원분들의 숨은 노고 덕분에 안전한 환경 속에서 아티스트와 CEO로서의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으니까요.”
유빈이 세운 회사명 ‘르’는 ‘r’을 세 번 겹쳐서 만들었다. ‘진짜는 진짜를 알아본다’는 뜻의 힙합 용어 ‘real recognize real’을 축약한 단어다. 그 의미처럼, 그는 앞으로 아티스트와 스태프진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회사를 만들어 나가려 한다. 진짜를 향한 유빈의 도전은 이제 막 닻을 올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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