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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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벗 삼은 일상, 인생을 행복으로 ‘채색’하다

의정부교도소 교위 김상욱

창작의 본질적 쾌감은 하나둘 완성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의정부교도소 보안과 김상욱 교위는 새하얀 캔버스를 물들이며 창작의 세계를 만끽하고 있다. 섬세한 붓 터치로 일상을 더욱 풍성하게, 보다 생동하게 누리는 그의 그림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 폭에 담긴 행복은 이만큼 크다.

김주희 사진 이정도

그림이 선물한 풍성한 일상

본래 꿈은 ‘우연히’ 생겨난다고 했던가. 의정부교도소 보안과 김상욱 교위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그림에 호기심이 생겼다. 수업 시간이 끝나고 복도에 나갔다가 벽에 걸려 있던 어느 데생 그림을 마주하면서다. 눈길을 뗄 수 없었던 고등학생은 ‘나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문득 떠오른 소망에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그림이 굉장히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다음날부터 학교 미술부에 가입하고 그림을 배웠죠. 서양화로 입시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꽤 흥미를 느끼고는 한동안 그림을 그리다 잠시 손을 놓았었는데요. 지난해 잠 못 이루던 밤에 의정부교도소의 숲길 풍경을 그리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상욱 교위는 휴대폰을 활용한 디지털 그림부터 수채화, 파스텔화, 아크릴화, 유화까지 그림의 영역을 능수능란하게 넘나든다. 요즘에는 주로 아크릴화를 그리지만 차분한 색의 질감을 내기 위해 목탄과 파스텔을 칼로 간 후 아크릴 물감에 섞어 사용하는 등 아이디어를 활용해 자신만의 화풍을 표현하고 있다. 풍경, 인물, 추상 등 그림의 주제 또한 다채롭다. 풍경화의 경우 바다를 자주 그리는데, 직접 그 장소를 찾아 바다에 대한 느낌을 오롯이 경험하고 난 후에야 작품을 완성한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 그리고 동료의 가족을 대상으로 연필을 사용한 인물화도 즐겨 그린다. 이때 겉모습이 아닌 표정 속에 담긴 인물의 이야기를 그린다. 살아오면서 누적된 표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추상화는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많이 느낀다고. 이처럼 김상욱 교위는 폭넓은 예술 활동으로 창작의 기쁨과 생동감 넘치는 일상을 누리는 중이다.

‘나’를 드러내는 점, 선, 면

김상욱 교위에게 그림을 그리는 일은 온전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수작업의 결실이란 결국 내 모습 그 자체이니 말이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스트레스는 해소되고 잊고 살았던 나에게 집중하는 힘이 샘솟는다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림은 제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죠.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이야기에 형체를 입혀주는 과정입니다. 혹은 눈에 보이는 어떤 사물이나 장면을 내가 보는 시각으로 표현하는 작업이기도 하죠. 그림에 몰입을 하다 보면 복잡한 생각을 잠재우고 불편한 일들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목적을 설정하고 그림을 그릴 때면 삶에 생동감이 느껴져요. 언젠가 심리학에 능통한 직장 동료가 ‘그냥 그리는 것보다 목표 의식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면 더욱 즐겁지 않을까요?’라는 말을 해줬는데 마음에 깊이 와닿았습니다.”
지난해에는 ‘2021 공무원미술전’에 도전했다. 재료와 주제, 완성도 등을 고심해서 작품을 완성해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을 그리면서 품은 첫 목표를 이뤘다. 〈꽃밭〉이라는 이름으로 출품한 작품이 입선한 것이다. 건물 고층에서 바라본 주택가의 모습을 그렸는데, 아늑한 보금자리를 의미하는 집의 순수성과 본질을 꽃밭으로 표현하며 공감을 끌어냈다.
이뿐이 아니다. 그림은 주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친목을 다지는 매개체가 돼 주기도 한다. 2년 전에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자 동호회를 만들 계획까지 세웠다. 갑작스러운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아쉽게도 진행하지 못했지만 동호회 활동이 가능해지는 날이 찾아오면 벽화 그리기 봉사 같은 유의미한 활동을 이어갈 참이다.

섬세한 붓 터치로 완성하는 한 폭의 행복

김상욱 교위는 그림을 두고 ‘시간을 박제한 추억’이라 정의한다. 찰나의 순간에 느낀 감정, 감각, 풍경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집 한쪽에 마련된 작업실에는 추억이 깃든 작품들이 즐비해 있다. 아들과 함께 떠난 동해 차박 여행의 추억을 담은 그림은 가장 소중한 작품 중 하나다. 여행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태풍주의보 소식을 들었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작은 텐트를 치고 밥을 먹었는데, 그곳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아들 사진을 찍었더랬다. 당시의 파도 소리와 움직임, 바다 수색을 비롯해 아련한 감정을 담아 그림을 그렸다. 최근 교정공무원 동기와 떠난 서해 여행의 추억도 그림으로 남겼다. 긴 운전 끝에 도착한 해남항의 밤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강렬하게 물 위를 비추는 불빛들과 잔잔한 바닷가의 정적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각기 다른 매력의 두 바다에서 그의 섬세한 화풍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다.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자연이 주는 소리에 귀 기울입니다. 파도의 소리, 바람의 세기, 공기의 온도 등을 그림에 그대로 녹여내려 노력합니다. 당시의 기억을 또렷하게 재현해냈을 때의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김상욱 교위는 그림에 도전하고 싶지만 주저하는 이들을 위한 도움말도 잊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려면 기본기를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학원에 등록해 전문 강사에게 배우는 것도 좋지만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기본기를 다진 후에는 다른 작가들의 그림을 찾아보되 그대로 따라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해가는 것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그림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면 금방 성장한다고 용기를 건넸다.
김상욱 교위는 그림으로 또 다른 꿈을 꾼다. 더욱 다채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한 후, 1~2년 후에 전시회를 여는 것이 1차 목표다. 작품을 나만의 것이 아닌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 이유에서다. 공무원미술전 입선으로 자신감과 경험을 얻었으니 다른 대회에도 출품할 예정이다. 코로나19가 누그러지면 적정한 시기에 직장 내 예술동호회 활동을 이어갈 계획도 가지고 있다. 예술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교정공무원 동료들을 향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나’보다는 ‘우리’라는 공동체로 살 때가 많기 때문이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을 추천합니다. 그림뿐만 아니라 음악, 연극, 글쓰기 등 모두 좋아요. 코로나19 장기화로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이 지친 시기잖아요. 창작 활동으로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다 보면 내면적으로 훨씬 강해질 거예요. 우울한 시대를 극복하고, 어떤 상황에도 여유로워질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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