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상징하는 음식
나물
우리나라 사람은 대대로 수많은 식물을 먹어 왔다. 직접 재배하기도 하지만 식용 가능한 야생식물을 채취해 그대로 먹는다. 이파리부터 줄기, 뿌리, 껍질, 어린순과 싹까지 아주 다양하게 섭취하는데, 그만큼 나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글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우리나라 사람은 대대로 수많은 식물을 먹어 왔다. 직접 재배하기도 하지만 식용 가능한 야생식물을 채취해 그대로 먹는다. 이파리부터 줄기, 뿌리, 껍질, 어린순과 싹까지 아주 다양하게 섭취하는데, 그만큼 나물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글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불 켜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 온다. 아해야 박주산채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한석봉으로 알려진 조선 명필 서예가 한호의 시다. 거친 술과 산나물, 즉 박주산채(薄酒山菜)에 산나물이 등장한다. 옛 선비들은 청빈(淸貧)의 상징으로 늘 맨 먼저 나물을 꼽았다. 소사채갱(疏食菜羹·거친 밥과 나물국)이라 부르며 이를 먹고사는 것을 스스로 깨끗하다 여겼다.
하지만 손이 굉장히 많이 가는 음식이 나물이다. 안빈낙도라 하기엔 가족에게 많은 고생을 시켰다. 요즘으로 따지면 어림없다. 과정을 보자. 일단 캐온 나물의 흙을 털어 다듬고 억센 부위를 떼는 등 손이 많이 간다. 억센 나물은 데치거나 기름을 두르고 살짝 볶아야 한다. 더 억세면 찧거나 아예 말려 뒀다가 써야 한다. 참기름과 들기름, 간장, 된장도 들어가고 때에 따라선 마른 멸치나 고기를 넣어 맛을 더한다.
그대로 무쳐내는 생채(生菜)도 있고 한 번 익혀낸 숙채(熟菜), 말렸다 불려 무치는 건채(乾菜) 등 상태와 종류에 따라 다양한 조리법이 따른다. 게다가 나물은 쉬이 상하는 탓에 보관도 어려워 매일 준비해야 하니 고충이 더하다. 그래서 나물 찬을 상에 많이 내려면 그만큼 숙련된 일손이 필요하다. 이쯤 되면 고급 음식이다. 재료비보다 인건비가 많이 드는 찬이다. 요즘이라면 선비(공직자 또는 학자)가 나물을 먹고 청빈을 논할 수 있을까?
봄나물이 밥상에 오르면 어디선가 봄바람이 한바탕 불어오는 느낌이라 기분이 썩 좋다. 소설가 김훈은 봄나물을 찬양했다. ‘언 땅을 뚫고 가장 먼저 이 세상에 처음 엽록소를 내미는’ 쑥을 시작으로 맛있는 화원(花園)이 온 세상에 펼쳐진다.
채식의 ‘끝판왕’이 나물이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만든다. 푸성귀의 잎사귀나 뿌리, 새순, 심지어 나무껍질까지 채취해 나물로 이용했다. 그 옛날 기근과 수탈로 죽어가던 민초가 목숨줄을 이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봄이면 산과 들에 머위, 시금치, 미나리, 고사리, 쑥, 냉이, 달래, 지칭개, 망초 등이 돋아나고 땅속의 칡, 도라지, 우엉에는 단맛이 든다.
나무엔 참두릅, 엄나무 순(개두릅), 옻 순, 참죽(가죽)이 돋아나고 껍질은 가시오갈피 등이 있어 이를 뜯고 벗겨 나물을 해 먹었다. 마땅한 곡식이 없을 시기에 나물로 주린 배와 영양을 채웠다. 봄나물엔 영양이 많다. 비타민과 섬유소가 많아 건강 식재료다. 나물 중에는 약초로 치는 것도 많다. 어쩌면 당시 부잣집 머슴 보리밥보다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초근목피를 먹고도 어쨌든 건강하게 살아남은 이유다.
나물은 한식 상차림의 구성요소 중 가장 두드러진 찬의 형식이다. 경작하거나 채취한 채소나 해초, 나무껍질, 뿌리 등 다양한 재료와 요리법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물 찬 솜씨는 대물림이요, 손맛이 전해진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한, 대부분 식용식물은 나물 재료가 된다. 김치나 국거리로 쓰는 주요 작물의 잎사귀나 열매를 이용한 나머지도 나물로 쓴다. 무청 시래기가 대표적이다. 무는 무대로 썰어 무나물, 무생채 등을 만들고, 무청 시래기는 한번 말렸다 삶아서 이용한다. 고사리, 고구마 줄기, 토란대 등은 줄기를 쓰는 경우다. 뿌리를 쓸 때도 있다. 도라지나 우엉은 뿌리만, 냉이와 달래는 잎사귀와 뿌리를 한꺼번에 무쳐 나물로 내기도 한다.
식용식물의 종류는 한식 상차림에서 제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민들레와 천문동도 무쳐 먹는다. 먹기에 썩 좋지 않으면 말려서 먹고, 삶고 찢어서 먹는다. 한국인이 먹지 않는 식물은 독초거나, 잔디처럼 아무 맛이 없는, 그냥 ‘풀’일 뿐이다. 산과 들의 나물을 캐 먹다가 그 맛이 좋으면 작물로 삼아 기르기도 한다. 명이나물(산마늘)이나 냉이, 달래, 참죽(가죽), 비름 등이 그런 과정을 거쳐 농산물이 됐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역시 복합미(複合味)를 선호하는 한국인은 사발에 밥과 나물을 한데 넣고 쓱쓱 비벼 먹길 즐긴다. 달콤하면서 쌉싸름한 맛을 내는 나물이 고추장이나 참기름, 간장의 맛과 어우러진다. 요즘처럼 화창한 주말이면 산자락 나물밥 식당이 그득그득 찬다. 반가운 봄나물을 돋아나게 한 따스한 볕이 고마운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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