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이젼〉, 이게 2011년 작품이라고?
최근 넷플릭스 같은 OTT를 통해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을 접한 분들이라면 이 작품이 2011년에 개봉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이 영화 속 바이러스의 전파 과정이 정확히 코로나19의 상황을 예견하고 있어서다. 홍콩 출장을 다녀온 후 몸살 증상을 보이던 베스(귀네스 팰트로)가 4일째 되는 날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입에 거품을 물고 사망하고, 그의 아들 클라크 역시 학교에서 돌아와 기침을 시작하더니 손을 쓰지도 못하고 사망한다. 베스의 남편 미치(맷 데이먼)는 졸지에 아내와 아들을 잃었지만 격리된 채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고, 자신이 감염되지 않는 면역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뒤늦게 돌아온 딸 조리와 함께 힘겨운 상황을 버텨내려 하지만, 세상은 이미 공포에 질린 군중들의 약탈이 자행되는 통제 불능의 팬데믹 상황으로 빠져든다. 바이러스를 연구해 백신을 만들려는 연구자들과 전파를 막기 위해 시행되는 사회적 거리두기, 이를 기회로 삼으려는 제약회사나 유튜브에 가짜 뉴스를 올려 불신을 조장하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등등. 감염병이 퍼져나가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상황들이 펼쳐진다.
마치 보고서처럼 며칠째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가를 담담하게 전하는 연출 방식으로 이렇다 할 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지만, 보는 내내 소름이 돋는 건 어떻게 예견했는지 너무나 코로나19 상황과 똑같은 전개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특히 감염병이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현상이 그렇고, 바이러스만큼 무서운 사회의 혼돈(사재기나 폭동, 약탈 같은)이나, 이에 대처하는 질병통제 센터가 정보를 공개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대목, 또 대중들의 불신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문제들까지 영화는 정확하게 8년 후 벌어질 팬데믹 상황을 예측해낸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이 바이러스의 진원지로서 홍콩의 어느 돼지 축사로 날아든 박쥐를 제시한 것도 놀라운 점이다. 박쥐가 싼 똥을 돼지가 먹고 그 돼지를 사람이 먹는 과정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됐다는 이 영화의 가설은, 실제로 코로나19가 자연환경이 파괴돼 터전을 잃은 박쥐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 근처로 내려오면서 생겨난 ‘인수 공통 바이러스’로 추정되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제 이 픽션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코로나19를 겪은 우리에게는 하나의 논픽션으로 다가온다. 상당한 취재와 논리적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허구였지만, 이제는 팬데믹 흐름을 비교적 정확하게 담아낸 보고서 같은 작품이 된 것이다.
〈감기〉, 컨트롤 타워 문제에 더 예민한 우리
마치 코로나19를 예견한 듯한 영화 〈컨테이젼〉이 시사하는 건, 이 속수무책으로 퍼져나가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이를 막기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를 돈벌이의 기회로 삼는 이들도 있다는 점이다. 백신을 만들어낸 한 연구원이 자신의 몸에 그걸 주사하고 마스크를 벗은 채 감염된 아버지를 찾는 장면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이 연구원으로부터 시작해 백신이 양산되고 결국 팬데믹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 물론 코로나19의 양상은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백신을 맞으면 감염을 줄이거나 감염돼도 증상을 줄일 수 있지만, 아직 100% 감염을 막는 백신은 나오지 않아서다. 대신 경증이 더 많은 오미크론으로 코로나19가 변이됨으로써 코로나19 펜데믹은 집단 면역의 방식으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길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컨테이젼〉이나 코로나19가 모두 환경 파괴로 인해 감염병이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점이다. 감염병의 확산이 환경 위기의 징후라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새롭게 주목받은 작품으로 할리우드의 〈컨테이젼〉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감기〉가 있다. 호흡기로 감염되는 치사율 100%의 바이러스가 발생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상황의 공포를 그린 이 영화는 바이러스 감염이 부르는 혼란의 양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특히 누군가의 재채기 하나로 바이러스를 머금은 비말이 난사되듯 날아가는 장면은 코로나19를 마주한 우리에게는 훨씬 섬뜩한 장면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감기〉가 그리고 있는 진짜 공포의 실체다. 즉 바이러스가 만들어내는 공포는 일차적이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공포로서 이 영화는 ‘투명하지 못한 정부의 통제와 감시’를 지목한다. 심지어 생존자가 존재하지만 감염됐다는 이유로 종합운동장에 격리된 채 살처분되는 끔찍한 상황들은 물론 극적으로 표현된 것이지만,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투명하지 못한 컨트롤 타워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감염병을 다룬 영화들이 시사하는 것
〈감기〉가 바이러스의 공포보다 컨트롤 타워 부재의 공포에 집중한 건, 성수대교 붕괴(1994), 삼풍백화점 붕괴(1995), 대구 지하철 참사(2003)는 물론이고 최근 세월호 참사(2014) 등등 다양한 재난을 겪으면서 생겨난 한국인들 특유의 감수성 때문이다. ‘한국형 재난영화’들은 그래서 대부분 재난 그 자체만큼 이를 대처하는 컨트롤 타워의 문제를 지목해 오곤 했다. 예를 들어 〈괴물〉에서 한강에 출몰한 괴물이라는 ‘재난’에 맞서는 건 결국 딸을 괴물에게 빼앗긴 소시민 박강두네 가족이다. 괴물을 찾아 해치워야 할 군 병력은 오히려 사람들의 현장 접근을 막고, 정부는 사건을 축소 왜곡하려 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즉 한국형 재난영화로서 감염병의 확산과 그로 인한 혼돈을 다룬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에게 중요한 건 ‘재난이 왜 발생하는가’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다. 코로나19가 발생한 건 〈컨테이젼〉이 제시한 것처럼, 인간의 환경 파괴가 그 주원인이다. 또한 지난 2년여간 코로나19에 대응해 온 전 세계인들의 과정을 복기하면 백신 개발과 더불어 마스크 한 장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가와 인간의 노력만이 아닌 자연의 선택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따라서 감염병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마치 코로나19 상황을 예언이라도 하듯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점에 그다지 놀랄 필요는 없다. 이미 그만큼 우리네 환경문제는 그 논리적 전개가 예상될 만큼 분명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중요한 건 이러한 일종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가져야 하는 경각심이다. 과연 지금처럼 그대로 살아도 되는 일일까. 눈앞에 도래할 위기가 분명하게 보이는 데도 말이다. 비슷한 취향을 통해 국가를 뛰어넘는 초국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새로운 플랫폼이 과거와는 새로운 드라마들을 만들어내고, 그 드라마들이 국가를 뛰어넘는 취향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지금 OTT를 통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