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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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 명소
햇살인 듯, 톡

저기 꽃 핀다 꽃 봐라. 여기서 톡 저기서 톡. ‘저 꽃 보라’며 말하기도 전에 꽃이 또 톡 피고, 툭 터진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봄이고 꽃이 폈다. 큰 눈 몇 번에 큰 추위 몇 번을 견뎌 맞은 봄인지. 꽃들 모두 그렇게 저릿하도록 찼던 겨울의 바람을 견뎌 매화가 되고 유채꽃이 되고 벚꽃이 됐다. 마치 겨우내 모아 뒀던 햇살을 터트린 것처럼 눈부신 ‘빛의 터짐’이다. 4월은 그런 꽃들로 전국이 기분 좋게 소란할 때. 그래서 누구든 꽃 곁에 주저앉아 한눈 좀 팔다 와도 좋을 때다.

글. 사진 이시목 여행 작가

매화·산수유·진달래 한데 어울린 꽃대궐
서울 종로 창덕궁

서울의 봄은 4월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꽃이 피지 않은 곳이 없고, 보이지 않는 곳이 드물 정도다. 그중에서도 고궁의 4월은 각별하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생강나무를 필두로 경복궁 아미산의 앵두나무가 꽃을 틔우고, 덕수궁 석어당의 살구나무 꽃이 여봐란 듯이 또 톡 터진다.
창덕궁은 그렇게 고운 4월의 고궁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꽃밭’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공간 배치와 건축의 유연함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4월 초·중순엔 그 아름다움에 꽃까지 더해져 장관을 이룬다. 그야말로 ‘울긋불긋한 꽃 대궐’이다. 상상해 보시라. 굴뚝과 꽃담의 묵은 냄새 사이로 은은한 꽃향기가 번지는 자리다. 그 중심에 매화가 있다. 특히 낙선재 뜰에서 만나는 매화가 곱다.
낙선재의 매화가 밭이라면, 자시문과 승화루 앞의 매화는 담이다. 겹이 많아 색이 더 화려하고 고운 홍매화가 장관을 이룬다. 그건 말 그대로, 자연이 이룬 ‘살아 있는 꽃담’이다. 술보다 꽃을 더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비 내리는 날 주점 대신 ‘매화 피는 날 창덕궁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해봐도 좋겠다.

남산공원의 벚꽃도 흐드러져요

서울 중심에 자리한 남산은 벚꽃 필 무렵 걷기 좋은 곳이다. 추천 산책로는 남측순환로와 북측순환로. 남측순환로는 남산도서관에서 N서울타워까지 약 1.2km(20~30분), 북측순환로는 국립극장에서 옛 백범광장 남산성곽공원 부근까지 약 3km(40~50분)다. 느릿느릿 꽃 보며 걷기엔 넓고 완만한 북측순환로가 낫다. N서울타워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에서도 벚꽃은 주인공이다.

첫사랑의 애틋함을 기억나게 하는 곳
인천 강화 고려산

4월 중·하순의 어느 하늘 맑은 봄날, 어쩌다 이르게 눈 뜬 날이라면 강화에 있는 고려산으로 길을 잡자. 고려산 어귀 부근리에는 수천만 년 세월의 고인돌이 우뚝하고, 산등성이엔 붉은 진달래꽃이 무성하다. 산의 서쪽 끝자락인 낙조봉 정상에선 눈부시게 아름다운 낙조도 펼쳐진다. 그만큼 고운 빛깔의 진달래 군락지(20만여 평)와 경쾌한 조망을 품은 곳이 고려산이다. 그래서일까, 고려산에 오르면 진달래꽃 같았던 첫사랑의 기억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봄날같이 짧기만 했던 풋사랑이다.
고려산을 오르는 길은 백련사와 청련사, 적석사, 미꾸지고개 네 군데다. 이중 백련사 코스를 이용하면 정상 부근의 진달래 군락지를 비교적 수월하게 오를 수 있다. 특히 이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고 그 길이가 길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다. 백련사에서 정상까지 불과 30여 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등산객이 한꺼번에 몰리는 진달래 만개 시기에는 차량의 출입을 통제해 고인돌광장에서부터 걸어 올라야 한다. 그래도 1시간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으니 좋다. 고인돌광장으로 원점 회귀하는 데는 3시간 정도면 되고, 낙조봉을 거쳐 적석사로 내려가는 길은 4시간이면 충분하다. 진달래꽃에 푹 파묻히고 싶다면 봄날의 고려산, 그곳에 서 보시라.

고인돌공원도 놓치지 마세요

강화엔 고인돌이 많다. 하점면과 내가면·고려산 기슭에 140여 기의 고인돌이 몰려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고인돌은 부근리 고인돌공원 내에 있는 지석묘(사적 137호)다. 우리나라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두 개의 굄돌 위에 놓인 덮개돌은 길이 7.1m, 너비 5.5m의 흑모 편마암으로 거대한 몸체와 함께 형태적인 아름다움이 돋보여 학술적 가치가 높다.

노란 햇살이 와글와글 톡톡
충남 서산 유기방가옥

“엄마~ 자, 웃어보세요. 하나 둘 셋!”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카메라 저편에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어머니를 앉히고, “수선화보다 예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안개 자욱하게 피어올랐던 4월 중순 어느 날의 유기방가옥에서였다.
유기방가옥은 최근 서산에서 가장 ‘핫’한 곳으로 꼽힌다. 100여 년 된 고택 주위로 노란 수선화가 빼곡하게 피어서다. 주인 유기방 씨가 20년 가까이 정성 들여 조성한 꽃밭으로 1,600여㎡에 달한다. 작지 않은 규모라 집 한 채가 고스란히 수선화 꽃밭에 폭 안긴다. 마치 ‘땅 위에 은하수를 옮겨 놓은 듯’ 집 뒤란이며 옆, 앞뜰 전부가 노란 수선화 속이라, 보는 내내 가슴이 달뜬다. 여기에 수선화 꽃밭을 둘러싼 풍경까지 고와 화제다. 꽃밭을 기준으로 뒤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지고, 고택 바로 곁으로는 산수유며 홍매화, 목련꽃이 한창이다. 그 사이로 산책로가 구불구불 지나니, 굽이도는 모퉁이마다에서 수선화를 만난다. 만개 시기는 4월 초·중순이다.
고택 안에서는 간단한 음료도 마실 수 있다. 식혜 한 잔을 들고 고택을 품은 여미리 일대를 둘러봐도 좋고, 마을 입구 정미소를 리모델링한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부려 봐도 좋다.

‘서산 게국지’를 아시나요?

서산은 예부터 별미가 많은 곳이다. 게국지, 우럭젓국, 박속밀국낙지탕 등 바다와 갯벌과 산과 들이 고루 발달해 식재료가 풍성했던 덕분이다. 이중 꼭 서산이어야 하는 음식은 게국지다. 게국지는 곰삭은 꽃게장 국물(게국)에 황석어젓, 민물새우 등을 넣어 양념한 김치로 끓여낸 일종의 김치찌개다. 첫 맛은 씁쓸하고 짠 편이지만 뒷맛이 개운하고 감칠맛이 남달라 간장게장에 버금가는 ‘밥도둑’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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