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응원이 돼 주는 존재가 되자
글. 홍성교도소 교위 정우성
글. 홍성교도소 교위 정우성
우리 소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수용자가 발생했다. 출근하는 동안 꿈인지 생시인지 어이없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다만 교도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를 희망했다.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눈에 비치는 광경은 아수라장이었다. 그야말로 전쟁터라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여기저기에서 지원 인원과 물품을 찾느라 고함을 치며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랄까? 보안과에 들어서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대구교도소로 파견을 가야 하니 간단한 생필품만 챙기고 대기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본소가 정리가 되는 대로 교대해 주겠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런 비상사태에서는 모두가 하나 돼 극복해야 하기에 바로 준비했고, 그렇게 약 4주간의 대구교도소 파견근무가 시작됐다.
신축 대구교도소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8시경이었다. 다행히 대구교도소에 대구지방교정청 소속 직원분들이 다수 지원해 주셔서 신속하게 정리됐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하고, 우리는 모두가 교도관이라는 소속감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뿌듯함은 잠시 일뿐! 바로 야근을 시작해야 하는데, 레벨D 방호복을 착용하고 근무해야 했다. 게다가 2부제 근무체제는 정신과 육체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레벨D 방호복 상태로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벗을 때면, 차가운 겨울바람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근무복을 바늘같이 뚫고 지나가 온몸을 찌른다. 비번 날 자고 나면 또다시 근무이고, 그때마다 축축하게 젖을 옷을 떠올리며 다시 입으려니 마음이 착잡할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근무는 버티면 그만이다. 그러나 가족과의 생이별은 극복하기 힘들었다. 아내에게 본소와 대구교도소 상황을 이야기하고, 당분간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음을 설명했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아빠 언제 와? 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는 영상통화를 했고, 늦은 밤이면 아내와 긴 대화를 나눴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나에게 아내의 응원은 큰 힘이 됐다. 그리고 본소 확진자가 있는 곳에서 근무하다 보면 코로나19에 노출돼 오염될 수 있고,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에게 전염이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대구에서 힘들더라도 참고 견뎌보라는 말까지 해줬다.
특히 감동받은 이야기는 ‘희기동소(喜忌同所)’라고 좋은 일과 나쁜 일은 한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어부에게 드넓은 바다는 보물 찾기와 같다. 배 한 대와 튼튼한 그물만 있으면 바다는 그야말로 기회이자 축복의 장소인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그리 녹녹하지 않다. 때로는 암초에 부딪치고, 때로는 거센 파도에 배가 뒤집히면서 많은 어부들의 목숨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부에게 바다란 무엇인가? 즐거움의 장소인가? 아니면 괴로움의 장소인가? 단지 때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어부에게 바다란 즐거움과 기회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괴로움의 원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대구에서 나쁜 일만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좋은 일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대구교도소에서 첫 1~2주는 수용자도 직원도 생존본능 때문인지, 아니면 코로나의 두려움 때문이지 그럭저럭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3주가 접어들면서 수용자의 반발은 거세져 갔다. 자유의 억압이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임을 확연하게 느꼈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하고, 어떻게든 거실 밖으로 나와 움직이고 싶어 했다. 거듭되는 전수조사에서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방역수칙 상 인간의 욕망을 차단하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이었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레벨D 방호복은 온몸을 쪼이며 짓누르는 갑옷처럼 느껴졌다. 어떻게든 잠시라도 방호복을 벋고 가볍게 있고 싶어 했다. 코로나19로 방호복을 입고 코로나19와 싸우시는 분들은 어떻게 버텼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코로나 시대 간호사분들을 포함해 코로나19와 싸우는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용자의 요구사항은 늘어만 갔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은 지속적인 격려뿐이었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니 다 같이 견뎌 극복하자고 얘기하고 또 얘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PCR 검사까지 거부하는 수용자가 나타났다. 아무튼 하루하루가 길고 힘들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리고 솔로몬의 반지에 적혀있는 문구 ‘이 또한 지나가리라’처럼 그렇게 힘든 시간도 견디다 보니 크리스마스도 지나가고, 새해도 지나가고, 그렇게 약 4주가량이 흘러 본소로 무사히 복귀하게 됐다.
복귀하고 일주일 정도 정상화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소가 안정화됐다. 그리고 첫 작업장 근무를 들어갔는데 수용자 한 명이 다가와 대구교도소에서 너무너무 감사했다며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우리는 TV 보며 도시락 먹고 자고, 또 먹고 자며 버티면 됐지만 주임님들은 방호복 입고 힘들게 근무하셨는데, 그 덕분에 안전하게 지냈고 무사히 복귀하게 됐습니다. 감사드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는 것이다. 참으로 묘한 감정이 들었다. 당시 나는 수용자들에게 격려만 해줬을 뿐인데…. 이들도 나에게 이런 응원을 해 주는구나 생각하니 나름 괜찮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내가 건넨 ‘희기동소(喜忌同所)’라는 말이 떠올랐다. 교도관에게 교도소는 어부의 바다와 같은 곳이었다. 우리는 바다를 원망만 하고 산 것이 아닐까? 잘 찾아보면 분명 기쁨의 시간도 존재할 것 같은데…. 어부가 바다를 더 사랑함으로써 바다를 이해하고 그곳에서 만선의 기쁨을 찾듯이, 우리도 수용자를 더 이해함으로써 보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희망을 느꼈다. 어부는 바다를 응원하고 바다는 어부를 응원하는 그런 관계가 우리에게 바람직한 관계가 아닐까? 마치 교도관이 수용자에게 건전한 사회 복귀를 응원하고, 수용자는 안전한 수감 생활을 하도록 도와주는 교도관의 존재에 감사함으로써 응원하는 관계가 이뤄질 때 비로소 우리의 존재가, 우리의 직장이 꽃을 피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으로 대구교도소 신축지에서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 드리며, 2022년 모두가 코로나19로 지친 이 순간, 서로에게 응원이 돼 주는 그런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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