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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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담장 너머도, 꽃은 피어난다

글. 안동교도소 대체복무요원 이문경

대체복무, 그리고 원예실과의 첫 만남

대전교육센터에서의 3주는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센터에 계신 복무관님들과 다른 강사분들께서 매일 같이 우리가 앞으로 하게 될 업무와 관련된 실무 교육, 안전 교육, 보안 교육 등 필요한 내용들을 심도 있게 가르쳐 주셨고, 37명의 믿음직한 동기들도 만나게 됐으며, 대전교도소를 견학할 소중한 기회도 있었다. 그렇게 교육기간을 마치고 마침내 배치받은 곳은 안동교도소였다.
버스를 타고 안동교도소 정문에 오니 ‘대체복무요원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는 따뜻한 문구의 플래카드가 보였고, 그제서야 정말 우리가 대체복무를 시작했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후 2주간 신규 요원으로써 적응 기간을 마친 후에 나는 내가 자원한 대로 원예 부서에 배치됐다. 들어오기 전 원래 플랜테리어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집에서 나름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을 키웠었지만, 원예실에 와서 보니 그와는 스케일이 다른 작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왼편에 있는 온실에는 미처 이름을 다 알지 못하는 수십 종의 수목들과 화초들, 난이나 선인장 등이 빼곡하게 정렬돼 있었고, 오른편 비닐하우스에는 100개가 넘는 국화들이 화분에 앉아 푸르른 잎들을 뽐내고 있었다.
이후 담당 주임님과 이전에 관리하던 수용자분들로부터 물주기, 순따기, 분갈이, 가지치기, 농약 치는 법 등 중요한 내용들을 속성으로 배웠으나, 역시 초보자였던 나와 동료 요원은 걱정에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우리는 이 식물들을 한번 제대로 키워보자 하는 열정을 불태우며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학구열이 넘치던 동료 원예 요원이 수목 관리에 대한 책들을 여러 권 구매해 함께 매일 사무실에서 읽었다. 일과 시간 종료 후에도 역시 인터넷으로 삽목, 가지치기 등 기본 기술부터 해서 갖가지 품종에 대한 설명과 특징, 키우는 법을 정독해 우리만의 원예 도감 또한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각 부서 사무실에서 키우시다가 상태가 안 좋아진 식물들을 가져다주시면 우리는 각 사무실의 환경에 걸맞은 다른 화초들을 추천해 가져가실 수 있도록 도왔고, 가져오신 식물들은 다시 회복해 좀 더 특성에 걸맞은 장소로 배치될 수 있게끔 정성을 다해 키웠다. 이후 여러 부서의 계장님, 과장님들께서 종종 오셔서 우리가 정성 들여 키운 잘 자란 식물들을 간택해 가실 때는 마치 잘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것처럼 시원섭섭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도 해당 부서 사무실에서 잘 자라는 모습을 확인할 때마다 괜히 뿌듯하고 미소가 절로 지어지곤 한다.

그 해, 우리 여름은

작년 여름 원예 일을 하며 기억에 남는 일들이라면 역시 교도소 내부의 수목 관리였다. 교도소 곳곳에는 그간의 세월을 증명하듯 수많은 담쟁이덩굴, 잡초, 벌집 등 불청객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고, 우리 두 명은 매일 곡괭이, 호미, 전지가위, 삽 등의 생소한 도구들을 들고 종횡무진 하며 녀석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7, 8월의 한여름, 매일 오전 보안과 앞 정문에 나가 보도블록이나 시멘트 틈 사이사이에 자란 잡초들을 끝없이 캐내다 보면 정말 질릴 때도 있었다. 심지어 뿌리째 뽑아내도, 비만 오면 어느새 무럭무럭 다시 자라나는 녀석들을 보면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덕분에 왜 그토록 많은 문인들이 잡초의 생명력을 칭찬했는지 정말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안동교도소 직원 식당 창문 너머에는 죽은 장미 넝쿨들과 오래된 조경수들이 빼곡하게 자라 창가를 덮어서 밝은 낮에도 저녁처럼 깜깜해 보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며칠간 우리가 전지가위와 삽을 들고 와서 모두 제거하자 조리사님들과 영양사님의 표정도 마치 화사해진 창가만큼 무척 환해지셨던 기억이 난다. 비록 벌들 때문에 살충제를 들고 여기저기 도망 다니며 일하긴 했지만, 한층 더 밝아진 풍경과 여사님들의 얼굴을 보니 이 또한 원예 요원으로써 어깨가 으쓱 해졌다. 수고했다고 가져다주신 아이스크림은 덤이지만 말이다.
그 외에도 여름에는 우비를 입고 20L의 농약을 끙끙대며 뿌리곤 했고, 매일같이 운동장 안 밖에 있는 수많은 나무들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 수형에 맞춰 전정 작업을 하곤 했다. 가을에는 교도소 복도나 외부의 민원실, 총무과 등에 아름답게 꽃을 피운 수십 개의 소국과 대국 등을 배치 및 관리하며 칭찬도 받고, 허브나 공기정화 식물 등을 포기 나누기로 번식시켜 대체복무 생활관에 배치하고 꾸미기도 했다. 되돌아보니 참 바쁘게 보냈던 것 같다.

교도소 담장 너머도

아직 1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거의 사계절을 한 장소에서 매일 지내다 보니 밖에서는 놓치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바쁘게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는 높은 회색 주벽들 사이로 아름다운 노을빛이 파도처럼 넘실거린다. 매일 같이 다른 빛깔의 하늘과 구름을 보다 보면, ‘아, 교도소 안도 밖과 똑같구나. 해가 뜨고 지며, 사람이 사는 그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곳도 비가 오고, 눈이 오고, 그 덕에 꽃도 아름답게 피고 벌이 그 꿀을 따는 그런 곳 말이다.
사회에서 바라보는 교정시설의 시야는 굉장히 좁아서 왜곡되기 쉽다. 특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교정시설은 언제나 폭력과 부조리로 점철돼 있다. 하지만 대체복무를 하며 느낀 교정시설의 느낌은 정말 다르다. 사회에서 저지른 죄의 결과에 따라 처벌을 받는 수용자들, 그들이 형을 마치고 사회로 돌아갈 때 더 이상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돕는 교도관님들, 그리고 교도소라는 교정시설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일하는 직원들 등으로 이뤄진 사회의 중요한 축이다. 앞으로의 미디어에서는 교도관과 수용자뿐만이 아니라, 그 사이에서 묵묵히 일하는 대체복무요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들 모두가 어떻게 공익에 성실히 기여하는지 보이지 않을까?
교도소 내에서 근무하다 보면 다른 부서의 동료 대체복무요원들도 자주 마주친다. 그들을 보면 역시나 항상 웃는 얼굴로 생기 있게 맡은 일들을 하고 있다. 더 이상 우리가 수용자의 신분이 아닌 대체복무요원으로써 교도소 내 꼭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직원분들의 짐을 덜어드리고 있는 것 같아 늘 뿌듯하고 기쁘다. 특히 많은 직원분들께서 칭찬해 주시고 격려해 주실 때마다 더욱 그 점을 실감한다. 동료들 모두 대체복무를 오랫동안 기다린 친구들이라 사회에서 정말 다양한 직업군에 있어온 만큼, 그들 모두의 특기와 재능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는 더 많은 지역과 분야에서 대체복무를 위해 열릴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겨우내 잠들어 있다가도 봄이 오면 다시 힘차게 기지개를 뻗으며 잎을 내고 꽃을 피우는 식물들처럼 대체복무요원들의 열정과 재능이 대한민국 사회의 이곳저곳에서 활짝 피어나는 그날이 오기를 바라며, 전국의 모든 대체복무요원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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