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바다의 보물(貝物)
바지락
귀금속 등 보물을 패물(佩物)이라 한다. 우리말 보배 역시 한자어 보패(寶貝)에서 나왔다. 조개를 뜻하는 한자어 패(貝)는 돈이나 재물을 뜻한다. 세계 곳곳에서 패총이 발견될 정도로 조개는 초기 인류에게 생명을 유지해 준 값진 식량이었다.
글. 사진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귀금속 등 보물을 패물(佩物)이라 한다. 우리말 보배 역시 한자어 보패(寶貝)에서 나왔다. 조개를 뜻하는 한자어 패(貝)는 돈이나 재물을 뜻한다. 세계 곳곳에서 패총이 발견될 정도로 조개는 초기 인류에게 생명을 유지해 준 값진 식량이었다.
글. 사진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알맹이는 양질의 단백질 공급원, 껍데기는 돈으로도 쓰였다. 한자에 ‘조개 패(貝)’가 들어가는 자는 재물(財), 선물(贈), 밑천(資), 삯(費), 보물(寶) 등 돈과 관련된 것이 많다.
금이나 주식도 그렇듯 재화는 가치가 변한다. 조개는 맛이 드는 지금부터 가장 값지다.
봄 바지락을 위시해 백합, 개조개(대합) 등은 물론 귀한 새조개, 갈미조개(개량조개) 모두 3월에 즐기기 좋다. 굴은 5월까지 맛볼 수 있다. 시원하고 감칠맛을 낼 뿐 아니라 살도 단단하고 탱글탱글하다. 만춘(晩春) 산란기에 들면 독성을 품을 뿐 아니라 씹는 맛도 덜하다.
삶아도 구워도 맛 좋은 조개는 특유의 풍미가 진해서 국물을 내기에 좋다. 국과 찌개를 즐기는 습식(濕食)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선 조갯국을 많이 끓인다. 특히 갯벌에서 잡기 좋은 바지락을 많이 쓴다. 시원한 국물 맛이 식사나 해장으로 제격이라 바지락으로 밑 국물을 내는 집이 많다. 괜히 바지락을 국민 조개라 하는 게 아니다.
백합과에 속하는 바지락은 값도 싸고 맛도 좋지만 작다는 단점이 있다. 씨알이 잘아서 까먹기는 귀찮지만 국물이 시원하고 감칠맛이 제대로 들어 많은 음식에 사용된다. 칼국수니 수제비, 짬뽕 등에 밑 국물을 제공한다.
요모조모 다양한 요리가 가능한 바지락은 한반도 서남해안에서 주로 난다. 인천 앞바다부터 안산 화성 등 경기도권부터 충남 서해안 전역에선 바지락으로 칼국수를 주로 끓여먹는다. 해감을 끝낸 바지락을 한가득 넣고 국물을 뺀 다음 반죽을 밀어 칼국수를 넣고 끓이면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자체가 조미료 이상 감칠맛을 내니 애호박 등 푸성귀나 숭숭 썰어 넣고 한소끔 끓여 내면 완성된다. 바지락에서 나온 국물은 그 자체로 시원하다. 본래가 바닷물을 머금어 짭조름하니 간도 맞아떨어진다.
요즘부터 잡히는 바지락은 씹는 맛이 좋다. 재첩보다 좀 큰 크기라지만 알맹이도 탱글하다. 이런 경우엔 알맹이를 빼내 자잘하게 다져 죽을 쑤거나 그 자체를 볶아서 먹기도 한다. 새콤달콤한 양념에 봄 미나리와 함께 무쳐 먹어도 좋다.전북 군산과 부안 등지에선 바지락 죽을 많이 해 먹는다. 속살을 다져 참기름에 볶다가 밥을 넣고 뭉근한 불로 한참을 쑤어내면 쫄깃한 바지락살이 가득 든 맛깔나는 죽이 된다. 다진 채소를 넣으면 색깔도 모양새도 고우니 식욕이 절로 살아난다. 고소한 바지락죽 한 그릇이 전복이나 백합 부럽지 않은 감칠맛을 낸다.
남도에선 초무침을 많이 먹는다. 전남 고흥과 장흥 등 바지락 산지에선 미나리, 쑥갓, 양배추 등을 채 썰고 난 후 삶은 바지락을 부어 넣고 막걸리 식초와 매콤한 고춧가루, 설탕에 쓱쓱 버무려 초무침으로 즐긴다. 초무침을 집어먹고 나면 밥을 비벼 비빔밥으로 마무리한다.
사철 즐기기로는 된장국부터 짬뽕이나 우동 같은 국물요리가 제격이다. 몇 개만 툭툭 던져 넣어도 뽀얀 국물이 우러난다. 화학조미료 대용이다. 바지락에 함유한 아미노산 성분도 글루탐산, 베타민 등 조미료의 주요성분과 같다. 된장에도 콩에서 나온 아미노산이 많다. 이 둘이 만나면 시너지가 나 된장찌개 맛이 몇 배나 시원해진다. 감칠맛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셈이다.
우리와 같은 바다를 쓰는 중국 산둥 요리에도 바지락을 많이 쓴다. 바지락 볶음(爆炒花甲)이 있다. 매콤한 고추기름에 두반장을 넣고 껍질째 들들 볶는 요리다. 시원한 바지락의 맛이 매콤한 기름에 녹아들어 감칠맛 진한 볶음요리가 된다.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넣고 우물우물하다 껍질만 툭툭 뱉어내면 쫄깃한 조개 볶음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바지락을 쓰기로는 봉골레 파스타도 빼놓을 수 없다. 백합이나 모시조개를 쓰는 경우가 많지만 바지락도 상관없다. 봉골레는 그저 조개(vongole)란 뜻이다. 바지락과 마늘을 올리브유에 볶아 맛을 내면 싱그러운 조개 향이 두루 배어 든 봉골레 스파게티가 된다. 다만 좀 큰 바지락을 넣어야 보기나 먹기에 좋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해감 시켜놓은 바지락을 냉동실에 얼려뒀다가 라면 끓일 때 넣어도 맛있다. 찬물일 때 몇 개만 넣어둬도 분말수프와 결합해 순식간에 맛이 살아난다. 몸뚱이는 작지만 바지락은 생각보다 큰 역할을 하는 식탁의 보배다.
구분
개인정보 보호 책임자
성명
김호중
부서
법무부 교정기획과
연락처
02-2110-3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