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세요? 봄날의 소나기
경기 양평 소나기마을 & 황순원문학관
소나기마을은 소설가 황순원(1915~2000)의 문학테마파크다. 그중에서도 소설 <소나기>의 감성으로 채색된 공간이다. 재현의 키워드는 ‘수숫단’과 ‘징검다리’ 그리고 ‘소나기’다. 먼저 메인 공간인 황순원문학관부터 둘러보자. 소설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가 소나기를 피했던 수숫단 모양의 문학관은 황순원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곳이다.
<소나기>의 배경이었던 징검다리 등도 최근 개관한 영상체험관에 실감나게 담겼다. 들어서는 순간 갈대가 흔들리고 물이 흐르고, 관람객의 발걸음에 따라 물의 파장이 인다. 별빛 같은 소나기도 타닥타닥 내리고 폴폴 나비도 난다. IT 기술과 결합해 빛으로 쏟아져 내리는 문학이 경이롭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건 역시 비, ‘소나기’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지도 않았는데, ‘보랏빛 먹장구름이 내려’ 앉지도 않았는데 맑은 하늘에 소나기가 ‘쏴~’하고 쏟아지는 마법 같은 순간, 그 환희가 소나기마을엔 있다. 비록 스크링쿨러-비에 불과하지만,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할 빛깔의 감성 소나기이니 맘껏 즐겨 보자. 그러다 상념이 깊어지면, 잠시 수숫단에 기대어 쉬거나 광장을 둘러싼 야산의 능선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천천히 걸어보면 될 일이다.
두물머리 ‘물멍’도 필수
“양수리로 오시게/그까짓 사는 일 한 점 이슬 명예나 지위 다 버리고/그냥 맨 몸으로 오시게(중략)/남한강과 북한강이 뜨겁게 속살 섞는 두물머리로(하략)”(박문제의 시 <양수리로 오시게> 중에서) 소나기마을을 오가는 길엔 두물머리에 잠시 들러 산책을 즐겨보면 어떨까. 비 내려 안개 몰려왔다 밀려나는 날이라면. 오래 앉아 강물과 몸을 섞는 빗줄기를 감상해도 좋다.
거기, 볕 잘 드는 들판 언저리
경남 하동 최참판댁 & 박경리문학관
봄이면 이 땅 어디보다 환해지는 곳이다. 볕 또한 푸지게 내려, 온 들이 봄 안에 쏙 담긴 듯 매화·산수유·개나리 줄지어 핀다. 연둣빛 새순이며 보리도 오종종 돋았고, 키 작은 봄풀도 수북하다. 이곳이 바로 박경리(1926~2008)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평사리다. 평사리는 ‘평사낙안(平沙落雁)’이란 별칭으로 불릴 만큼 경치가 좋은 곳. 특히 푸른 들(악양벌)과 푸른 강(섬진강)을 품고 앉아 사철 그 빛깔이 곱다.
최참판댁은 최치수의 헛기침 소리가 들릴 듯 생생한 소설 속 무대다. 실재하지 않는 문학 속 허구의 공간이지만 실재인 듯 존재한다. 얼마나 소소하고 세세한 부분에까지 신경을 써 재현했는지, 소설 종반부에 나오는 문장(‘서희는 해당화 가지를 휘어잡았다.’) 하나에까지 반응해 해당화를 심었다. 어쩌면 이런 정성과 노력 덕분일 터. 최참판댁은 어느새 소설 속 최참판댁 자체로 여겨질 만큼 익숙하다.
최참판댁 위, 가장 높은 자리엔 박경리 작가의 작품세계를 만날 수 있는 문학관도 있다. 하지만 굳이 뜰 앞에 오래 선다.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 만큼 조그만 작가의 동상 앞에 서면 악양, 너른 벌이 한눈에 조망되는 것. 시간이 여유롭다면, 그 들판을 이어 이어 흐르는 논둑길(토지길 1코스)도 걸어볼 일이다. 무른 논둑 밟히는 느낌이 봄을 발음할 때만큼이나 설레 좋을 테다.
뷰 맛집 ‘스타웨이 하동’
악양벌 푸른 들녘을 좀 더 넉넉하게 품고 싶다면, 스타웨이 하동으로 길을 잡자. 최참판댁에서 불과 1.9km 거리에 있는 스타웨이 하동은 별 모양의 스카이워크와 지리산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를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여기에 섬진강 뷰의 카페까지 갖춰 하동을 대표하는 인증샷 명소로 꼽힌다.
톡톡 하르르, 노랗게 봄 터지는
강원 춘천 실레마을 & 김유정문학촌
소설 <동백꽃>의 작가 김유정은 봄과 참 잘 어울린다. 햇살처럼 노란 빛깔의 개동백(생강나무)이 꽃망울 맺힐 때(1908년 2월 12일)에 태어났고, 소설 <봄봄>과 <동백꽃> 같은 봄을 연상케 하는 소설을 여러 편 남긴 까닭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오래, 무작정, 김유정의 계절을 ‘봄’이라 느끼는 이유는, 29세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의 마지막 계절이 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에 실레마을을 자주 찾아 거닌다. 실레마을은 김유정의 고향이자, <동백꽃> <봄봄> <만무방> 등 실레마을을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 12편의 산실이다. 공간뿐 아니라 등장인물까지 실재한 경우가 많아, 국내 문학기행지 어디보다 허구와 현실의 싱크로율이 높다. 그만큼 둘러볼 곳은 많고 둘러볼 공간도 넓다.
탐방 코스는 크게 두 가지. 생가를 중심으로 한 문학촌에서는 부자로 태어났으나 궁핍한 채로 죽은 그의 삶과, 열렬했으나 홀로 깊었던 그의 사랑을 만날 수 있고, 마을에서는 소설의 실제 무대를 거닐어볼 수 있다. 이중 생가와 김유정이야기집, 김유정역은 반드시 둘러보자. ‘ㅁ’자형의 초가집인 그의 생가에서는 소설의 주요 장면을 재현해 놓은 조형물을, 이야기집에서는 김유정의 삶과 문학세계를, 김유정역에서는 문학과 예술로 덧칠된 빈티지한 역의 감성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춘천에서 빠지면 서운한 닭갈비
‘알을 내고 폐품이 되다시피 한 닭들이 싼값에 공급되면서 골목에 닭갈비라는 술안주들이 생겨났다.’(한수산의 <안개시정거리> 중에서) 춘천을 대표하는 별미는 닭갈비다. 소설에까지 등장할 정도다. 맛볼 수 있는 메뉴는 숯불과 철판 두 가지. 철판닭갈비는 닭갈비를 먹은 후 양념에 비벼 먹는 볶음밥이 맛있고, 숯불닭갈비는 참숯에 훈연된 맛이 일품이다. 실레마을에서는 모두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