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을 노래하던 연예인, 직접 나선 도전
누가 알았을까.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을 응원하던 연예인이 직접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리라고.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명문대 출신 개그맨이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한다고 하니 호기심이 일었다. 그의 호언이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어느새 시험 응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됐다. 서울대 출신이니 당연히 합격하리라는 보이지 않는 기대가 부담스럽지는 않았을까. 오히려 그는 합격을 목표로 삼지 않고 도전하는 데 무게를 뒀지만, 그래도 일단 책을 펼쳤으니 뒤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공인중개사에 관심을 둔 분들이 많아지면서 시험 난이도가 예상과 다르게 무척 높았습니다. 공부만 해도 합격할까, 말까인데 본업을 하면서 시험을 준비하려니 더 쉽지 않았습니다.”
1차 시험에 합격하고, 1년여를 더 공부한 후 다시 도전한 2차 시험. 기적처럼 기준을 충족하는 절묘한 점수를 받았고, 그렇게 그의 이름 석 자가 합격자 명단에 올랐다. 이후로 얼마간은 축하 인사를 받느라 바빴다. 이미 개그맨으로서 일가를 이룬 그가 이제 와 자격증 하나를 딴다고 해서 직업을 바꿀 리는 없을 터. 그러나 오랜 기간 한 기업의 모델로서 수험생의 합격을 기원하던 그의 도전은 많은 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차 시험을 얼마 앞두고는 방송만 마치면 책을 펼쳐 들고 입시생처럼 공부했다는 서경석. 쉽지 않은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은 그에게도 남다른 성취감을 줬지만, 이 때문에 한동안 홀로 육아를 책임져야 했던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멋모르고 시험에 도전해보니 불필요하게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 방법을 유튜브 콘텐츠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공도 실패도 인생을 일구는 밭
1990년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그의 화려했던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실제로 그는 1993년 데뷔 후 그해 MBC 코미디대상에서 신인상을 받았고, 1996년 우수상, 1997년 최우수상, 1999년 대상을 받는 등 개그맨으로서 승승장구했다. 처음부터 연예계에서 큰 성공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멋모르던 시절에 방송을 한 번 경험해 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했던 MBC 코미디언 모집 공고. 그때 지원서를 냈던 결정이 이후 그의 진로를 완전히 뒤바꿨다.
“이전에도 진로 고민을 하기는 했지만, 그때처럼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집에서는 외무고시를 보기 바라셨는데, 저는 입시를 두 번 치러서 그런지 당시에는 어려운 책을 다시 펼쳐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죠. 불어를 좋아해서 불문과에 갔으니 불문학자가 돼볼까, 어릴 적 아버지 소원이었던 사업가가 돼볼까 등 여러 갈래로 많이 고민했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MBC에서 신인 코미디언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본 거죠. 한 번도 안 가본 방송국 구경도 하고 머리도 식힐 겸,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보고 오자는 마음으로 응시했는데 합격을 했습니다. 이때 결정이 제 인생에 큰 터닝포인트가 됐죠.”
합격하고도 방송 생활을 계속할 것인지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운명의 방향은 그를 계속 방송가에 머무르게 했다. 김영희 PD의 조언으로 개그맨 이윤석과 콤비를 이루면서 단숨에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비행기는 높은 곳으로만 날지 않았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고도를 낮추어 날아가야 할 때도 있는 법.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방송 제작 현장은 예전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그즈음 그가 세운 복귀 전략은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 것. 그렇게 드라마에서 연기를 시작했으나, 연기자로서 안착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그때 경험이 연기력을 키우는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한다.
“이전에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하는 콩트 연기가 전부였는데, 일일 드라마에서 기라성 같은 연기자들과 연기를 하면서 저 역시 나름대로 연기력이 상당히 좋아졌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도전을 이어갔다. 2014년에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출연해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다시금 대중에게 자신을 알렸다. 당시 촬영하며 생긴 상처는 지금도 그의 몸에 훈장처럼 남아있다.
평범한 모두에게 일상의 응원가를 전하며
7년째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 MBC 표준FM 〈여성시대〉는 매일매일 그에게 인생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전국에서 날아온 청취자들의 사연은 별다른 첨삭 없이 읽어도 감동이 느껴질 만큼 진솔함이 눌려 담겼다.
“사연의 분량이 너무 길면 조금 잘라내지만, 일부러 예쁘게 꾸며서 편집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그 어떤 드라마보다 진한 감동이 있죠. 그래서 저는 일부러 방송 직전까지 사연을 먼저 펼쳐보지 않아요. 청취자와 같은 감정선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일 때 전해지는 감동이 있거든요.”
낯은 모르지만, 마음으로 이어진 청취자들과 울고 웃어온 시간 덕분일까. 그는 각자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환을 깊이 이해한다. 교정공무원을 향한 응원의 한마디에도 남모를 고충을 살핀 흔적이 역력하다.
“교정공무원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을 묵묵하게 하는 분들이잖아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시는 거고요. 제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교정교화를 위해 애쓰는 분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이 절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그는 “미디어에서 다루는 교정공무원에 대한 자극적인 묘사를 시청자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시대는 지났다”며, 다양한 방식으로 교정공무원의 존재가 알려지는 일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를 권했다. 그리고 그 역시 하루하루의 삶에 충실하며, 오늘보다 좀 더 괜찮은 사람으로 발전하고 싶다는 다짐을 덧붙인다.
“매번 탄탄대로를 걷지는 않았지만 크든 작든 제 역할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감사하는 마음이 큽니다. 현재 진행하는 라디오와 함께 유튜브 개인 채널도 정말 재미있게 제작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제 능력 안에서는 최선의 결과물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