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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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발견한 몰입의 기쁨

안동교도소 직업훈련교사 정호철 & 교감 박연봉

하루의 끝에서 나무와 마주한다. 나무의 향을 맡으며 자르고, 깎고, 다듬기를 반복한다. 작업에 집중할수록 세상의 근심은 옅어지고, 창작의 기쁨은 짙어진다. 마침내 머릿속 구상이 목공 작품으로 실현되는 그 순간, 희열과 감동이 남아 있던 스트레스를 말끔하게 씻어 낸다. 정호철 직업훈련교사와 박연봉 교감이 목공에 몰입하는 이유다.

강진우 사진 이정도

뛰어난 실력으로 완성한 목공의 울타리

최근 몇 년 사이 안동교도소 수용자들이 경상북도기능경기대회와 전국기능경기대회 실내장식 부문에서 수상했다는 소식이 연이어 들리고 있다. 2014년부터 안동교도소에서 수용자들에게 목공을 가르치고 있는 정호철 직업훈련교사 덕분이다. 1991년 제31회 국제기능올림픽 실내장식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일찍이 고도의 목공 기술을 인정받은 정호철 직업훈련교사는 이후 대기업 건설기술원과 공업고등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동시에 제자들의 국내외 기능경기대회 수상을 이끌며 지도교사로서의 역량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런 그가 안동교도소 식구가 된 데에는 젊은 시절 기능경기대회에 함께 출전했던 수용자들과의 추억이 큰 역할을 했다.
“제가 선수로 뛰던 당시에도 전국 각지의 수용자들이 기능경기대회에 참가했어요. 처음에는 조금 두려운 마음이 있기도 했는데, 막상 함께 대회를 치르다 보니 기술적으로 배울 점이 있더군요. 무엇보다도 열심히 목공 기술을 익혀서 출소 후 성실하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수용자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닿아 고향에 있는 안동교도소에 오게 됐습니다.”
정호철 직업훈련교사는 교정공무원들과 함께 목공 활동을 펼칠 수 있는 무대도 만들었다. 안동교도소 목공동호회 ‘울타리’를 조직해 틈틈이 교정공무원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 과거 경비교도대 식당으로 사용하던 건물에 목공작업실을 만들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강의를 이어 가던 정호철 직업훈련교사는 교정공무원들이 기능경기대회에 선수로 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뜻 있는 동호회원들을 훈련시킨 뒤 꾸준히 지역 및 전국 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정공무원과 수용자가 함께 수상자 명단에 오르는 진풍경도 종종 연출됐다고. 그 과정 속에서 박연봉 교감과도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었다.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힐링하다

박연봉 교감은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부서진 가구와 집기 수리는 그가 도맡았을 정도였다. 그 기질은 교정공무원이 된 후에도 줄곧 이어졌다. 수용자들이 목공 훈련을 받은 뒤 남은 자투리 나무들을 모아 조각배, 거북선 등을 만들었다. 제작 중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인터넷 독학으로 해결했다. 그럼에도 목공 기술 교육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그는 2020년 7월 안동교도소에 부임하면서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와 맞닥뜨렸다. 정호철 직업훈련교사가 만든 목공동호회 ‘울타리’가 바로 그것이었다.
“직업훈련과에서 일하게 되면서 정호철 직업훈련교사님의 명성을 듣게 됐고, 목공동호회가 활발하게 운영 중이라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목공을 배우고 싶었던 저에게 더없이 좋은 여건이었죠. 곧바로 울타리에 가입한 뒤 열심히 목공을 배웠습니다. 일과 후 야간과 주말을 활용해 열심히 배우다 보니 작년 처음으로 경상북도 및 전국 기능경기대회에도 출전하게 됐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치른 첫 번째 도전이었기에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출전 그 자체만으로도 목공 활동의 커다란 동기부여가 됐습니다.”
박연봉 교감은 목공의 매력으로 ‘남다른 몰입력’을 꼽았다. 자르기, 깎기, 다듬기, 끼워 맞추기 등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쉽지 않은 활동이지만, 나무 향을 맡으며 눈앞의 주어진 과제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스트레스가 풀리고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일상 속 문제들의 해결책도 종종 떠오른다는 것이다. 게다가 원래부터 나무와 만들기를 좋아했으니, 박연봉 교감에게 목공작업실은 치유의 공간이나 다름없다. 그가 정호철 직업훈련교사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는 배경이다.

목공 기술로 조각하는 향기로운 미래

박연봉 교감의 속마음을 듣던 정호철 직업훈련교사가 활짝 웃으며 “오히려 내가 고맙다”고 말한다. 20여 명에 이르는 동호회원들이 목공을 열심히 배우는 것은 물론 대회에 출전해 수상까지 하고 있으니, 목공 장인으로서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정복을 입은 교정공무원들과 사복을 입는 직원들은 서로 잘 모르는 상태로 지낼 수도 있는데요. 목공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중심 삼아 모두가 한데 모일 수 있으니 무척 기쁩니다. 제가 시간을 쪼개서 교정공무원들을 가르치는 이유죠. 그러면서 서로 가까워지고 업무상 도움도 주고받으니 수용자 교육훈련과 교정교화에도 한결 내실을 더할 수 있게 됐습니다.”
정호철 직업훈련교사도 동호회원들에게 이런저런 배움을 얻는다. 최근에는 7년째 국궁을 쏘며 전임지인 경북북부제3교도소 내에 활터를 만들기도 했던 박연봉 교감에게 활쏘기를 배우고 있는데,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아 열심히 활을 쏘며 스트레스를 푼다. 다채로운 교류와 소통 속에서 직장 동료 간의 우애와 사제로서의 정도 더욱 두터워지고 있다.
“최근 한 동호회원이 저에게 오셔서 ‘나는 이제 노후 걱정이 없다’고 하시더군요. 저에게 배우며 목공이라는 든든한 기술을 얻었으니, 은퇴 후에도 열심히 일하겠다는 말도 덧붙이셨죠. 저의 작은 노력이 함께하는 교정공무원들에게 새로운 꿈을 선사한 것 같아 무척 기분 좋았습니다. 박연봉 교감님도 오래도록 목공과 함께해 주실 거죠?(웃음)”
박연봉 교감이 유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실제로 두 사람은 목공과 함께하는 내일을 그리고 있다. 정호철 직업훈련교사는 목공 기술을 활용해 집 수리 및 가구 수리 봉사활동을 다니려 한다. 박연봉 교감도 꾸준한 목공 활동과 함께 틈틈이 정호철 직업훈련교사의 봉사활동을 도울 생각이다. 수백 년 된 고목처럼 이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목공은 앞으로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까. 그 모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Tip
정호철 직업훈련교사와 박연봉 교감이 전하는 목공 입문 TIP

정호철 직업훈련교사

“요즘 목공방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요. 실력 수준이 천차만별이라서 자칫하면 목공에 대한 흥미만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무작정 목공에 입문하기에 앞서, 열심히 정보를 수집해서 좋은 선생님을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박연봉 교감

“목공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만드는 게 좋습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배우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두면 오래도록 목공을 하기가 쉽지 않죠. 저는 만들기를 좋아하고 가구나 집기를 직접 수리하다 보니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는데요. 거창한 계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왜 목공을 배우려고 하나’를 고민하고 입문하면 한결 즐겁게 배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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