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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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청소년들에게 ‘인생 제2막’을 선물하다

제로캠프 이사장
최불암 배우

명실상부 ‘국민 배우’이자 ‘국민 아버지’인 최불암은 최근 소년 수용자들과 학교 밖 위기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삶을 향한 ‘인생 제2막’을 선물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가 평생에 걸쳐 매진해 온 연극이 그 매개체다.

강진우 사진 이정도

아이들을 위해 펼친 연극의 날개

어느덧 80대 중반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배우이자 연예인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최불암에게는 또 하나의 직함이 있다. 바로 ‘제로캠프 이사장’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제로캠프는 소년 수용자들과 학교 밖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아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며 그들 스스로 건전한 꿈과 흔들림 없는 자존감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연극과 아이들 교정교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여쭤보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연극은 확실히 아이들의 심성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소년 수용자를 포함한 위기 청소년들의 마음속은 공허합니다. 자신을 아낄 줄 모르고, 어떤 꿈을 갖고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니 문제를 일으키는 겁니다. 연극은 그런 아이들의 마음에 수많은 다른 삶을 심어 줍니다. 주인공과 조연이 되어보고 정의로운 인물과 역경을 이겨 낸 배역을 거치면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인생을 경험하고 여러 갈래의 생각과 마주합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나름의 기준과 목표를 세웁니다. 꿈이 바로 서니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다 보면 문제를 일으키는 행동이 부질없음을 깨닫게 되죠. 그렇게 아이들은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로 거듭납니다.”
수십 년 배우 생활을 거치며 연극의 힘을 누구보다 크게 실감한 그는 2013년 김천소년교도소의 문을 두드렸다. 청소년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그를 소년 수용자들에게로 이끈 것이다. 교정교화에 뜻이 있는 예술가들과 힘을 합쳐 소년 수용자들에게 연극을 가르친 끝에 2013년 12월 대강당에서 뮤지컬 <날개>를 공연했으며, 이를 시작으로 매년 한 편씩 꾸준히 소년 수용자들과 함께 연극을 완성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아쉽게도 연극을 올리지 못했지만, 일상으로의 회복이 본격화될 올해부터는 상황이 좋아지지 않겠냐는 게 그의 이야기다. 백발 성성한 대배우의 눈망울에는 소년 수용자들과 함께할 2022년에 대한 기대가 가득 담겨 있다.

소년 수용자들과 함께 울고 웃은 22년

최불암과 소년 수용자들의 첫 만남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4월 15일, 천안소년교도소 특설무대에서 뮤지컬 <춤추는 별들> 공연이 있었다. 그는 그날의 일들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교도소에 막 도착했을 때 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들을 위해 연극을 펼친다는 소식을 듣고 격려차 그에게 연락한 것. 고마움과 뿌듯함을 안고 소년 수용자 500명과 함께 무대에 선 그에게 또 한 번의 감동이 밀려왔다. 500명의 진심 어린 노랫소리에 관객과 출연진 모두가 눈물을 훔쳤다.
“그 무대의 중심에서 연기를 마치고 내려오면서 ‘이 아이들을 위한 일을 절대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 뒤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2012년 4월 소년원 수형 경험이 있는 한 독지가가 천주교 교정사목위원회에 거액의 기부금을 전달했고, 이를 바탕으로 꾸려진 제로캠프와 연결되면서 남몰래 그리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저의 전공이자 아이들의 교정교화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연극으로 함께할 수 있게 되어 아주 행복하게 이사장으로서의 활동을 이어 오고 있죠.(웃음)”
제로캠프는 최근 형기를 마치고 세상에 나온 소년 출소자들을 위한 새로운 활동 공간을 서울구치소 민원실 한편에 마련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희망커피 1호점이다. 최불암은 출소 후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방황하기 쉬운 이들을 바리스타로 채용하는 희망커피 1호점이 또 하나의 무대라고 말한다. 이곳에서 일하며 사회 적응력을 높이는 한편 경제적 자립의 밑바탕을 제힘으로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희망커피를 찾는 민원인이 많지 않은데, 그 빈자리를 교정공무원들이 채워주고 계시는 모습을 보며 무척 행복했습니다. ‘법무부와 교정본부가 소년 수용자들의 교정교화에 많이 신경 쓰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는데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의 제2의 인생을 밝히기 위해 애쓰시는 교정공무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최불암 시리즈’에 녹아 있는 뜨거운 사랑

최불암은 제로캠프 이사장 외에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국후원회장을 37년째 맡는 등 오랜 기간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활동에 힘써 왔다. <수사반장>에 출연하던 1972년, 그의 가슴에 불을 지핀 사건이 있었다. 보다 실감 나는 드라마를 위해 출연진과 연출진은 실제 사건 현장 견학을 종종 다녔는데, 어느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동사한 아이의 시신과 마주한 것이다.
“꽁꽁 언 그 아이는 두 팔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어요. 그만큼 추웠던 거죠. 그런데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그 어린아이에게 누구 하나 담요 한 조각 가져다 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20세기 대한민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싶은 마음에 가슴이 철렁했고, 비정한 세상을 만든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조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섰는데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왔습니다.”
1990년대 초반 대유행한 최불암 시리즈도 알고 보면 어린이와 청소년의 웃음을 위한 그의 뜨거운 마음에서 비롯됐다. 아이들이 세간에 떠도는 최불암 시리즈를 나누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는 출판사에 초상권, 성명권을 모두 내줬다. ‘나로 인해 아이들이 웃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그의 진심은 널리 퍼져 결국 전 국민을 웃게 만들었으며, 이는 그의 이미지에 친근감을 더하는 원동력이 됐다. 우리가 최불암을 바라보며 느끼는 특유의 친근함과 푸근함은 그의 선한 마음이 배경에 깔려 있었기에 비로소 완성될 수 있었다.
최불암은 아이들의 문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물질만능주의를 꼽는다. 어른들이 돈을 부르짖으며 각자 살길을 찾는 데만 몰두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는 청소년 문제의 해법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말한다.
“먼저 어른들이 각자의 잘못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아이들이 밝게 자라나야 우리나라의 내일이 밝아집니다. 이 점을 명심하고 실천한다면, 소년 수용자들과 위기 청소년들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이들을 둘러싼 삶과 환경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주세요. 저도 지금껏 그래 왔듯, 힘이 다하는 그날까지 연극으로 아이들을 일깨우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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