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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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울수록 깊은 맛이 나는 겨울의 별미

대구

1월, 차가운 바다에서 나는 생선도 참 많다. 찬물을 먹고 죄다 맛이 들었다. 대구의 시즌이기도 하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세계적으로 대구만큼 인기 있는 생선은 드물다. 잡기 쉽고 커다란 살집을 품은 대구는 인류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상당 부분 책임졌다. 그 때문에 전쟁도 일어났다. 커다란 입(大口)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은 생선이다.

글. 사진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대구, 인류 역사를 바꾸다

대구(cod)는 서양에서 일찌감치 진가를 발휘했다. 살점이 많고 비린내도 적은 덕에 유럽의 대표 어종으로 군림했다. 과거 바이킹은 말린 대구를 비상식량 삼아 배에 가득 싣고 멀리 노략질을 하러 다녔다. 스페인 바스크(Basque)인들은 대구 떼를 따라가다 신대륙(북미 뉴펀들랜드 지방)을 발견했다. 포르투갈에는 ‘바칼라우(bacalhau)’라는 이름의 대구 요리가 수천 가지가 있을 정도다. 바칼라우는 ‘염장 대구’ 자체를 의미한다. 염장했으니 간고등어처럼 단백질이 변형돼 감칠맛을 낸다.
서방 세계에서 자찬하는 ‘대항해시대’의 원동력은 대구였다. 말린 대구가 없었으면 ‘발견’도 ‘침략’도 어려웠다. 눈치 빠른 한자(Hansa) 동맹의 상인들은 노르웨이 베르겐에 당시 북해의 최고 히트상품 대구를 서남 유럽으로 유통하는 ‘창고형 물류센터’ 브뤼겐(Bryggen)을 지어 전 유럽에 유통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며 대구는 갑자기 귀해졌다. 유럽 곳곳에서 어장 분쟁이 일어났다. 20세기 중반 아이슬란드와 영국이 벌인 대구 전쟁(cod war)은 당시 냉전(cold war)만큼 심각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대구가 귀해진 탓에 한때 생대구는 최곳값을 받았다. 연근해산 대구탕 한 그릇에 1만 원을 상회했다. 이후 연근해 치어 방류사업을 꾸준히 펼친 덕에 지금은 개체 수를 많이 회복했다. 값은 내리지 않았다.

한류(寒流) 스타 대구

대구는 대표적 한류성 어종으로 겨울에 잡힌다. 대구는 입이 커서 대구(大口)다. 입이 크고 몸짓이 빨라 아무거나 쓱쓱 삼켜 버린다. 당연히 살도 투실하고 크다. 대구는 담백해 생선을 그리 즐기지 않는 이들도 꽤 좋아한다.포를 뜨면 다양한 음식으로 재가공할 수 있다.
한식에선 국을 끓이거나 쪄 먹는다. 특히 대가리를 내장, 콩나물 등과 함께 찌는 대구뽈찜(뽈때기찜)은 씹는 맛도 좋고 살점도 많이 붙었다. 뽈찜과 뽈탕은 살토막보다 고급이다.
역시 대구탕이 가장 흔하다. 맑은 탕과 매운탕 등 기호에 따라 나뉠 뿐이다. 시원한 국물 맛이 나는 까닭이다. 반쯤 말린 대구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반건 대구탕은 더욱 구수하고 감칠맛이 더하지만 향이 진해 호불호가 갈린다.
대구찜(뽈찜)은 아귀찜처럼 콩나물과 미나리, 매운 양념을 더해 중불에 볶아 낸 음식인데 담백하고 칼칼한 맛으로 즐긴다. 자작한 국물을 머금은 대구 대가리는 안줏감으로 썩 훌륭하다. 경남에선 배초향(방아)을 넣기도 한다.
유럽에서도 역시 겨울에 주로 먹는데, 생선에 맛이 드는 ‘제철’이야 대서양이나 태평양이나 서로 비슷한 덕이다. 찬물에 맛이 들 대로 든 싱싱한 대구. 따끈한 국물과 부드러운 살점은 어떤 한파도 이겨 낼 힘과 에너지를 준다.

대구 맛집을 찾아서

자원대구탕

삼각지를 이른바 ‘대구탕 골목’으로 이끈 대표 노포(老鋪)다. 커다란 대구 도막과 이리 등을 인심 좋게 넣고 미나리 등 채소를 한가득 올려 먹는 전골집이다. 칼칼한 양념 육수에 팔팔 끓여 낸 대구 살을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면 부드럽고 고소하게 목을 타고 넘는다. 슈크림처럼 부드러운 대구 살을 바삭하게 튀겨 낸 대구 튀김도 빼놓을 수 없고, 기본으로 내주는 아가미 젓갈도 연신 젓가락을 잡아끄는 별미다.

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대로62가길 6

해운대 속 씨원한 대구탕

과거 해운대 여행 갔던 이들로부터 전국적으로 입소문을 탄 집. 대구탕 국물 맛이 시원이 아니라 ‘씨원’이다. 해운대 풍경에 취해 간밤 술자리를 즐겼다면 이 국물이 약. 해장의 제왕이라는 복국과 견주어도 가히 겨룰 만하다. 맑은 탕이 상에 오르면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리고 국물부터 마신다. 목을 타고 위까지 흘러드는 뜨거운 국물이 당장 지친 몸을 되살린다.

위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달맞이길62번길 28

광화문 몽로

정통 이탈리아식 바칼라를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레스토랑. 바칼라는 염장 대구살(baccala)을 으깨 감자, 병아리콩과 함께 섞고 익힌 다음 치즈를 뿌려 낸 음식이다. 형태마저 사라진 대구살(정확히는 대구포의 살)을 포크로 잘라 내면 아주 고소하고 부드러운 스프레드가 된다. 갓 구워 내 바삭한 치아바타 빵에 발라 먹는다. 와인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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