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대 그리고 범죄심리학자의 길
고등학생 때부터 이수정 교수의 관심은 우리 사회를 향해 있었다. 사회와의 접점이 있는 학문을 통해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구를 꿈꿨다. 이러한 밑그림대로 그는 학부에서 사회심리학을 배우고 이후 심리측정학을 전공하면서 조현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들의 정서장애를 측정하는 절차를 개발해 박사 논문을 썼다. 그랬던 그가 사회심리학에서 범죄심리학으로 범위를 좁히고, 연구 대상자를 조현병 환자에서 범죄자로 바꾼 데는 경기대의 영향이 컸다.
“경기대는 교정학과가 있는 대학인데, 1999년 이곳에 채용되면서 법무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어요. 범죄자들의 위험 성향을 진단할 수 있는 심리검사로, 재범 위험성을 토대로 수용자를 분류하는 절차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였죠.”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엄밀히 말하면 직장에서 부여받은 업무의 일환으로 참여하는 것에 가까웠다. 이수정 교수가 범죄심리학자의 길을 향해 자발적으로 성큼 발을 내디딘 건 경남 마산경찰서에서 생애 처음으로 범죄자와 대면한 직후였다.
“배우자를 토막 살인해 야산에 묻었는데 시신 일부를 찾을 수 없다며, 여성 피의자들이니 동성의 전문가가 설득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경찰청의 요청으로 내려갔어요. 40년 가까이 학대받으며 살던 중 술 먹고 난동을 부리는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었죠. 그런데 한 페이지가 전부인 수사 기록에는 범행 동기로 ‘불화가 있던 중 앙심을 품고 배우자를 살해한 사건’이라고만 적혀 있더군요. 그걸 보는데 ‘앙심’이란 말에 도무지 설득도, 동의도 되지 않았어요. 범죄 심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던 시절이었지만, 외면하지 않고 평생 이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범죄 심리 연구의 학문적 토대를 만들다
이수정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교정학과가 생긴 경기대에 타이틀 하나를 추가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때까지 국내 대학에 전무했던 범죄심리학과 개설의 실행 주체가 된 것. 범죄심리학은 범죄자의 심리 특성뿐만 아니라 법무행정에서 심리학적 서비스가 필요한 영역을 두루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는 벤치마킹을 위해 2002년부터 2003년까지 1년 넘게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형사정책학부 교환교수 생활을 했다. 미국에서 교도소가 가장 밀집한 지역인 만큼 그곳에서 직접 미국 심리학자들이 교정제도 안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텍사스에서의 경험은 경기대 일반대학원에 범죄심리학과를 개설하는 건 물론이고 이후 제자들과의 연구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됐어요. 특히 그곳의 박사과정 학생들은 낮에는 교정시설에 가서 범죄자들을 만나 심리치료를 하고, 저녁에 모여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토론하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우리에게도 필요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실제로 이후 이수정 교수가 이끄는 범죄심리학과 수업과 연구에서 교정시설에 수감된 범죄자 대상의 면담과 심리치료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왔다. 범죄심리학 전문가 부재 시 범죄자를 구분하는 기준이 고작해야 죄명에 불과했다면, 이수정 교수가 국내 범죄심리학을 개척한 후부터는 교정시설 안에서도 위험을 초래할 자들을 예측해 관리할 수 있도록 범죄자들과의 면담 자료를 바탕으로 평가 기준과 방법을 개발해 적용하기 시작했다.
“사실 범죄자들을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초창기만 해도 교정학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는 있어도 직접 범죄자들을 만나 분석하고 데이터화하는 연구자는 없었거든요. 다행히 경기대가 연구를 명분으로 기회와 루트를 제공해 줬고, 여기에 시사 프로그램과 언론 활동을 통해 쌓은 인지도가 날개를 달아 주면서 하나둘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죠.”
그중 하나인 성범죄자의 전자발찌 착용 기준 또한 범죄자들과의 면담 자료 분석을 통해 마련됐는데, 전자발찌 착용은 성범죄율을 6분의 1~8분의 1가량 낮추는 성과를 가져왔다.
트라우마 극복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프로페셔널리즘
범죄자에 대한 공적인 자료와 통계에 접근하는 연구를 해 오다 보니 이수정 교수가 교정시설을 드나든 지도 어느새 20년이 넘었다. 적잖은 시간 동안 교정과 인연을 맺어 온 이수정 교수는 교정시설을 둘러싼 가장 반가운 변화로 심리치료과 신설을 꼽았다. 교정시설 내 심리치료과 도입은 이수정 교수가 정책 과제를 통해 제안한 것으로, 그는 교정교화의 핵심은 심리치료에 있다고 강조한다.
“예전에는 교정교화라는 게 심성을 순화하고, 종교 활동을 하고 직업(학업) 훈련을 하는 정도였어요. 심성 순화가 있었지만 그 방법은 ‘신문 열독’이 고작이었죠. 그런데 온갖 사건·사고를 담은 신문을 읽는 게 과연 심성 순화에 도움이 될까요? 교정교화는 하루 2시간 정도 심리치료를 통해 자신의 범죄가 피해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게 해 주는 게 중요해요. 예상외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는 범죄자가 정말 많습니다.”
현재 시범적으로 심리치료과를 도입한 전국의 교정시설은 모두 다섯 군데. 이를 통해 재범률을 10%가량 낮추는 효과를 거둔 만큼 이수정 교수는 전국의 교정시설로 심리치료과가 확산되길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심리치료가 단순히 수용자에게만 필요한 시스템이 아니라 교정공무원에게 보다 전문적인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스스로 ‘나는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다’라는 인식과 함께 번아웃을 치유하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무 환경 특성상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교정공무원이 적잖을 거예요. 실은 20년 넘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면담해 오면서 저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는데, 다행히 극복하는 방법을 찾았어요. 프로페셔널리즘, 즉 전문가가 되는 게 그것이죠. 기본적으로 일과 사생활을 섞지 말고, 일은 일에서 멈춰야 합니다. 대신 성장을 위한 꾸준한 노력을 통해 교정공무원 스스로 자신에 대한 평가가 좀 더 생산적으로 바뀌는 걸 경험하는 게 중요하죠.”
이 또한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이라는 이수정 교수는 요즘 20년 전에 했던 수용자 대상의 교정심리검사를 다시 하고 있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위험 소지가 있는 수용자를 선별하는 데 유용한 데이터를 모아 요즘 시대에 맞는 재표준화 작업을 하는 것. 연구실 곳곳에 겹겹이 쌓인 박스 더미에서 이 일의 방대함이 엿보이지만, 이번에도 이수정 교수 덕분에 우리 사회는 좀 더 안전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