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를 짊어진 ‘국가대표’라는 이름에 실린 무게는 가늠조차 되지 않을 때가 많다. 7년 전,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긴 박승희 선수는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 2관왕에 올랐다. 한 종목에서 세계 최정상에 오른 뒤,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국가대표로 나섰다. 두 종목에서 국가대표가 될 정도의 기량을 갖추는 일이 극히 드물기에 늘 주목을 받아 왔다. 17년간 이어 온 선수 생활에서 큰 전환점을 여러 번 맞이한 그녀는 현재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섰다. 은퇴 후 패션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남다른 행보를 이어 가는 중이다.
“주변 사람들 열에 아홉은 제가 코치를 할 줄 알았다고 해요. 오랫동안 운동을 해 왔던 터라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저는 은퇴 후 어렸을 때 품었던 꿈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전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기에 선수 생활 도중에도 훈련이 없는 주말마다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곤 했거든요. 결심이 선 이상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이 일을 진정으로 좋아하는지, 정말 내가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며 신중하게 접근했습니다.”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길, 한 발 한 발 내딛기에 막막하기도 했고 두려움도 컸다. 그럴수록 더욱 ‘진심’을 담아 나아가기로 했다. 패션 디자인 학교 과정을 수료하는가 하면 가죽공예 공방에서 직접 가방을 만들어 보며 경험의 폭과 깊이를 넓혀 갔다. 점차 가방 디자인에 매료됐고, 좋아하는 일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의지로 걸음을 뗐다. 좋은 디자인을 고민하고, 직접 발품과 손품을 팔며 제품을 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그녀는 자신의 첫 브랜드 ‘멜로페(MELOPE)’를 론칭했다.
경험은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
멜로페는 ‘음악 선율’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박승희 대표는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 선율이 있듯, 자신의 브랜드를 접하는 모두가 원하는 리듬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멜로페가 추구하는 디자인 가치는 ‘자연스러움’에 맞닿아 있다. 박승희 대표는 평소 일상 속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하는데, 누군가와 대화할 때나 전시, 영화, 음악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대부분이다. 과하지 않고 삶에 녹아드는 디자인의 가방은 고객들로 하여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고객들의 피드백은 디자이너로서 더 좋은 가방, 더 좋은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도움말이 되곤 한다.
“고객들의 후기를 보면서 힘을 많이 얻고 있어요. 한 고객이 제품 사진을 찍어서 정성스럽게 후기를 올려 주신 적이 있어요. 아주 세세하게 어떤 점이 좋은지 장문의 글로 남겨 주셨어요. 애정을 담은 글을 보며 자신감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고객은 제 모습을 보고 자신도 용기를 냈다며 SNS 메시지를 보내주셨는데, 참 뭉클하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계셔서 더욱 진정성을 가지고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빙상과 패션, 전혀 다른 영역인 만큼 자신의 역할 또한 확연히 다르다. 선수 생활을 할 때는 목표를 향해 운동에만 몰입했다면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소한 것조차 모두 자신의 선택과 결정을 통해 브랜드를 이끌어야 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하루하루 성장하는 중이라는 박승희 대표. 어려운 일 앞에서도 머뭇거리기보다는 재빨리 부딪혀 보는 게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일을 할수록 경험의 중요성을 아주 많이 깨닫고 있어요. 지금이 아니면 경험해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되레 용기가 나더라고요. 한번 시도하면 두려움이 반 이상은 줄어든달까요. 어떤 도전이든 처음이라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잖아요. 스스로 경험하고 실수도 해 보면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아요.”
도전이라는 행복
박승희 대표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녀는 방송인으로서도 새로운 면모를 보여 주고 있다. SBS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 중인 것. 또 최근에는 쇼트트랙 경기 해설자로 데뷔했다. 오랜 선수 생활로 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명쾌한 경기 해설을 도맡고 있다. 그녀는 계속해서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사람’이라고 한다. 자신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가족들이 있기에 자신감과 용기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 또 다른 도전을 이어 가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브랜드를 잘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주된 업무를 하나 정해 놓는 것보다 다양한 일을 해 보고 싶어요. 어떤 일을 하든지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선까지 다다르는 것도 중요하지요. 즐겁게 시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 온 박승희 대표. 도전이란 그저 두렵고 막막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고 삶의 무대를 넓혀 주는 매개라는 걸 매 순간 깨닫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정공무원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덧붙였다.
“생각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하잖아요. 우선 나 자신이 행복한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해요. 내가 행복해야 타인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수용자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독려하고 관리하는 교정공무원 여러분도 행복한 일을 찾고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용기를 내면 일상 속에서 여러 가지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