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끊임없이 과거를 뒤돌아보며 실수나 과오를 되새기는 이유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행동일 것이다. 이호 교수는 법의학 또한 단순히 한 사건의 부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원인을 살펴보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 사회의 여러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해 경찰청 과학수사 등 여러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는 이호 교수는 30여 년 경력의 베테랑 법의학자다.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법의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전라북도 1호 법의학자’로서 전북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부검을 전담하고 있다. 이호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변사 의심이 있을 때만 부검을 진행하는데, 그러다 보니 죽음이 자칫 주관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자신의 과실로 피해자가 사망한다면 대부분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요. 변사는 주관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아 객관적 시각에서 사실관계를 따져 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신원 불상자의 사망 사건이나 요양 병원에서 일어난 사망 사고, 범죄 연관성이 의심되는 사건과 안전사고는 반드시 부검을 해야 합니다. 범죄 연관성이 없다고 해서 단순하게 결론을 내릴 것이 아니라 실질적 육하원칙을 찾아서 제대로 마무리를 지어야 하죠.”
우리나라는 OECD 가입국 중에서 사인 불명이 가장 많은 나라다. 이호 교수는 그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교도소나 군대와 같은 집단 격리 시설 내 사망은 부검을 진행하지만, 일반적 사건은 변사 의심이 있어야만 법의학자에게 사건이 인계되기 때문이다. 또한 누군가 사망했을 때 해당 죽음에 문제가 없는지 검증을 받은 다음 사망 진단서를 떼고 화장·매장을 허용하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화장·매장이 끝난 후 사망 신고를 하는 우리나라의 사망 등록 시스템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법의학이 가해자나 피의자를 기소하는 증거로만 쓰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태어났을 때 주민등록번호를 발부하는 여러 절차가 있는 것처럼 죽음에서도 사망 원인을 육하원칙으로 완성할 수 있는 수단이 돼야 합니다. 강력 사건뿐만 아니라 어떤 죽음이든지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똑같은 사건을 예방하고, 죽음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됩니다.”
경청하는 사회를 위한 첫걸음
죽음으로부터 교훈을 얻는 사회가 되려면, 그 이전에 반드시 시행돼야 할 부분이 바로 사회 시스템 재정비다. 한 사람의 죽음이 각각의 에피소드로만 끝나지 않도록 ‘그런 죽음이 왜 발생하게 됐는지’를 따지고,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아야 한다. 이호 교수는 사건이나 범죄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을 고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범죄 양극화가 심해졌어요. 경제가 어려울수록 범죄 비율이 높아집니다. 같은 파도가 쳐도 맨 앞에서 그 파도를 온전히 맞아야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넘어질 수밖에 없죠. 그렇다고 범죄를 두둔해서는 안 되지만, 이를 한 사람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범죄가 일어나게 된 원인을 살펴봐야 해요.”
이호 교수는 수용자에 대한 교정교화 못지않게 같은 범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다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신뢰가 생기는 것은 물론, 수용자들도 사회를 적대시하지 않고 융화될 수 있다고 말이다. 이와 같은 흐름에 필요한 것이 ‘경청’이라고 이호 교수는 덧붙였다.
“고인의 몸에 남겨진 메시지를 잘 들어야 하는데, 선입관과 편견을 가지고 부검을 진행하면 놓치는 게 많아요. 사건 서류를 읽고 예단하는 경우, 나도 모르게 그 흔적만 찾으려고 할 수 있거든요. 그러면 실제 사망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죠. 미리 생각하고 마주하면 생각한 대로만 보여요. 경청하려면 항상 겸손해야 실수하지 않게 됩니다.”
내일을 기대하는 법의학자와 교정공무원
법의학자로서 이호 교수는 안타까운 사건을 자주 만난다. 이미 일어난 일이기에 돌이킬 수는 없지만, 예방할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살펴본다면 또 다른 내일을 기대할 수도 있을 터.
“자살하는 사람은 보통 유서가 있지만, 타살로 의심할 만큼 죽음에 대해 천천히 집요하게 준비해요. 만약 교정시설에서 자살에 대한 징후를 알아보려면 신체검사할 때 자해와 같은 흔적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이전에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제일 위험하거든요. 이런 사람은 또 시도할 수 있으니 특별 관리가 필요하겠죠.”
이호 교수는 법의학자와 교정공무원의 공통점이 사회문제를 가장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법의학자가 고인의 몸에 남겨진 메시지를 통해 사망 원인을 밝히다 보면 사회의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교정공무원도 수용자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보면 바꿔야 할 여러 시스템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경청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의학자와 교정공무원은 가장 선두에 서 있는 직업이 아닐까.
“법의학자로서 고인이 된 사람의 죽음에 책임은 없지만, 다음은 막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사회는 이미 벌어진 일에서 교훈을 찾는 사회가 돼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떠난 사람이 온몸으로 보여 준 메시지를 대신 이야기하는 역할도 수행해야 하죠.”
1997년 법의학을 시작해 어느덧 30년 가까이 한길을 걸어온 이호 교수. 그는 학생들이 휴머니스트로서 자질을 갖춰 나가도록 인도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너무 전문적인 지식에만 매몰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기본과 의사로서의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말이다.
“진정한 개혁은 미래 사회와의 대화 같아요. 내일을 꿈꾸며 살아갈 사람들에게 자양분을 주고, 그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완벽하고 힘 있는 계획이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제 꿈은, 의사라는 직업 자체가 사람들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느 동네에 병원이 생기면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가서 상의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럴 수 있도록 법의학자를 넘어 사회의학자로서도 역할을 수행하게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저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