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 있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일까? ‘코로나’라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사태를 겪으며 자신 앞에 주어진 일을 끝까지 완수하려는 마음가짐, 즉 ‘책임감’이야말로 공직자로서 모든 일의 원천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1,205명의 수용자가 감염됐고 직원들도 29명이나 감염된 2020년 12월의 서울동부구치소는 구치소 전체가 감염됐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정말 두려웠다. 매일매일 출근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이 수기는 2020년 12월부터 2021년 2월 8일까지 코로나 격리 수용동에서 근무가 해제되기 전까지 내 마음을 기록한 것이다. 두 달여간 이어진 코로나 사태는 내게 ‘책임감’과 ‘동료애’가 무엇인지를 가슴 깊숙이 깨닫게 해 준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충격과 공포
(2020년 12월 19일) 185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오후 2시경 온 메일을 출력해 보니 A4 용지 3장이 넘어가는 분량이었다. 숫자를 세다가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이럴 수가,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7층과 8층은 대부분의 수용자가 확진됐다. 내가 있는 6층은 그나마 위층들에 비해선 적었지만, 우리 사동도 거의 30% 정도가 확진됐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방호복을 입고 근무를 서야 하나.
(2020년 12월 23일) 우리는 오늘도 코로나 전수검사를 받았다. 요즘은 3일에 한 번씩 전 직원 및 수용자가 PCR 검사를 받는다. 내일은 몇 명이 확진됐을지 아무도 모른다. 문자가 올 때마다 가슴이 철렁. 두 번째 직원 확진자가 나온 12월 13일 이후 문자가 하루에 적어도 네다섯 통씩 온다. 문자를 확인할 때마다 앞서는 두려움과 공포.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또 누굴까, 어느 분이 확진된 걸까.
(2020년 12월 26일) “주임님 조심하세요. 꼭 살아 내세요.” 우리 수용동 재소자가 나에게 한 말이다. 남들이 보면 전쟁에 참전하는 군인으로 착각하겠다. 그러나 위의 말은 우리 상황이 그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정말 지금의 우리 상황은 매우 두렵고 공포스러운 상황이다. 매일같이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 더 두려운 적이다. 누가 감염자인지, 잠복기인지 아무도 모른다. 직원인지 수용자인지.
(2020년 12월 29일) 어제 야간 근무를 서는데 함께 있던 직원이 자신은 코로나 난민이라고 얘기를 한다. 자신이 지금 집에 못 들어간 지 10일이 넘는다면서 우리 소에 확진자가 너무 많고 위험해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낸다는 것이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라 자신은 코로나 난민이라는 것이다. 정말 격하게 공감이 됐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12월 13일 이후 난 퇴근해 집에 가면 자가 격리자처럼 집 밖으로 거의 안 나온다. 마트도 편의점도 좀처럼 가지 않는다. 두려움 때문이다. 내가 접촉한 확진자가 한두 명이 아니라서.
(2021년 1월 3일) 어제도 전수검사 때 난동을 부리는 수용자가 있었다. 그러나 그날 그 어느 직원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수용자가 확진자일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직원에게 욕하고 때릴 듯이 덤벼들기에 내가 중간에 막아서서 차단하려는 순간 그 수용자가 나를 밀쳤다. 나는 방호복을 입고 있었는데도 감염이 우려돼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결국 직원들이 그 욕을 다 받아 주고 겨우 달래서 진정시켰다. 매스컴에서 직원이 코로나를 전염시켰다고 직원 책임론을 부각한 이후, 수용자들은 “우리가 너네 때문에 코로나에 걸렸다”고 고성을 지르고 소란을 피우니 어쩔 수가 없었다.
코로나 격리 수용동 근무
(2021년 1월 4일) 아, 너무나 고된 하루였다. 예상은 했지만 격리팀으로 투입되고 딱 하루 근무했는데 이제까지 근무했던 그 어떤 때보다 힘들었다. 격리팀 근무 전에는 나도 명예퇴직 조건이 되니까 여차하면 명퇴하겠다는 생각, 즉 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해야 근무를 빠질 수 있을까? 그런데 오늘 직접 겪어 보니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내가 빠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예퇴직이라는 단어도 말끔히 지워졌다. 내 동료들이 격리 수용동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 어떻게 빠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절대로. 나는 내 동료들과 언제나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결코 그들을 떠나지 않으리라.
(2021년 1월 10일) 다른 격리팀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직원 확진 소식은 전체 격리팀 직원의 사기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매우 무겁다. 우울 그 자체다. 뭘 더 이상 어찌해야 할지. 아, 사랑하는 이들과 못 만나는 것. 이것이 가장 괴롭구나. 우리 직원들 너무나 고생이 많다. 당뇨에 기관지염까지 지병이 있는 직원들도 근무자가 부족해 예외 없이 격리팀에 배정되고 있다. 현실이 너무나 괴롭고 슬프다.
(2021년 1월 31일) 12월은 한마디로 공포였다. 특히 12월 24일쯤인 거 같은데, 빨리 방패를 갖다 달라는 격리팀 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TRS 무전기를 통해 들렸던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당시 격리 수용동은 아수라장이었다. 침 뱉고 도시락 집어던지고 욕하고. 그 난장판을 뚫고 수용동에 진입하려면 방패로 몸을 보호하고 접근해야 했다. 처음 투입됐던 1진과 2진은 확진자가 발생해 불과 4~5일 만에 즉시 교체됐다. 격리팀으로 투입되기만 하면 확진자가 발생하니 투입 순서를 기다리는 현장 직원들은 저마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하는 두려움과 공포감을 가졌다. 순서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가 코로나에 걸릴 것 같았다. 검사 후 어김없이 실시된 새벽까지 이어진 전방. 흐릿한 불빛 아래 주복도 군데군데 처 놓은 투명 비닐 차단막, 그 사이를 끊임없이 움직이는 하얀 방호복 입은 직원들과 푸른색 수의를 입은 확진된 재소자들, 또 그 와중에 들리는 수용자들과의 실랑이.
(2021년 2월 8일) 오늘부로 격리팀에서 해제. 이제 12월부터 먹어 온 그 지겨운 도시락을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되고 수용동에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해제가 되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일상으로 복귀
이제 근무 체제는 3부제, 2부제 근무에서 원래의 4부제 근무 체제로 돌아갔다. 그동안 서로 격리돼 있어 보지 못했던 직원들을 두 달여 만에 만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돌아보면 힘듦과 고통의 연속이었고 인내를 요구하는 나날이었지만 우리는 해냈다. 직원들은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확진자가 생겼을 때 한마음으로 아파하고 걱정했다. 우리가 그렇게 한 이유는 고생하는 최일선 현장 근무자가 바로 내 동료들이고 그들이 바로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난을 일부러 찾아서 겪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고난이 닥쳤을 때 극복해 가는 과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고난을 멋지게 극복해 냈을 때 그 조직 내 구성원들은 끈끈하게 서로 단합을 이뤄 낸다. 우리 서울동부구치소가 그랬다. 무엇이든 함께하면 견딜 수 있고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이런 훌륭한 동료들과 함께했던 지난 두 달은 나에게 동료애가 무엇인지, 또 공직자에게 책임감이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준 귀중한 경험의 시간이었다.
※ 2021 공직문학상 수상작(동상)을 요약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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