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세상을 지키는 따뜻한 사람들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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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 따라 낭만이 깃든
추억 여행지, 춘천

춘천은 추억 여행의 ‘원조’ 도시다. 학창 시절 엠티를 다니던 경춘선의 종착역이었고, 주머니 사정 넉넉지 않은 청춘을 위로하던 호반 나들이 코스였다. 쾌속 열차가 오가고 고속도로가 연결되면서 추억으로 향하는 길도 빨라졌다. 춘천교도소는 중앙고속도로와 춘천이 만나는 동내면에 위치해 있다.
글·사진 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춘천으로 향하는 ‘청춘’ 열차
춘천교도소에는 110여 년의 세월이 깃들어 있다. 1909년 경성감옥 춘천분감으로 문을 열었으며 춘천형무소(1946년), 춘천교도소(1961년) 시절을 거쳤다. 춘천교도소가 현 위치인 동내면에 옮겨 온 것은 1981년의 일이다. 서울~춘천 간 철로가 1939년 개통됐으니 춘천교도소는 100여 년간 도시의 변모와 시간을 함께한 셈이다.
춘천으로 향하는 경춘선 열차 이름도 ‘ITX-청춘’으로 바뀌었다. 청량리의 ‘청’, 춘천의 ‘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는데 2층 기차를 만나는 것 자체가 생경하다. 고속열차는 서울~춘천 간을 1시간 만에 주파한다. 차창에 비껴 흐르는 풍경처럼 추억 나들이도 ‘청춘’과 함께 빠르게 달려간다.
춘천은 많이 변했다. 의암호 변의 춘천역부터 번쩍번쩍해졌다. 역에서 받아든 춘천 지도를 보면 춘천 명동에만 있는 줄 알았던 닭갈비 골목이 어림잡아 일곱 곳이다. 웬만한 식당은 서너 집 건너 한 곳이 닭갈비, 막국수 간판을 내걸고 있다.
서민들의 삶과 향수, 춘천중앙시장
춘천중앙시장은 춘천의 역사와 추억의 궤를 같이한다. 일제강점기부터 문을 열었던 시장은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되며 모습을 감췄다가 1952년에 다시 장이 서기 시작했다.
시장에는 수십 년 전통을 간직한 가게가 여러 곳이다. 내장 골목에는 길목에 소, 돼지의 내장을 진열해 놓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전쟁 후 순대를 함지에 이고 다니며 팔다 정착한 원조집도 있고, 60년 전부터 시어머니가 끓여 오던 순댓국을 며느리가 대를 이어 내놓는 가게도 남아 있다. 소문난 닭집 옆에는 직접 뽑아 말린 건면을 파는 황소표 국숫집이 좌판을 맞춘다.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인 중앙시장은 이제 ‘낭만시장’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변신 중이다. 시장 골목 구석구석에 벽화가 그려졌고 버스킹이 열리며, 춘천의 옛이야기와 시장을 잇는 산책길이 부각되고 있다.
중앙시장 인근, 춘천 명동길은 여전히 북적북적하다. 명동길 초입에는 세월이 흘러도 드라마 <겨울연가>의 흔적을 찾아온 이방인들이 종종 눈에 띈다. 명동길은 유명한 춘천 닭갈비 골목으로 이어진다. 초입에 닭 모형이 그려져 있는 흥미로운 모양새다. 명동길은 북한강 변 남이섬과 함께 추억 여행의 오랜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근대사 서린 망대 골목, 죽림동 성당
낭만시장에서 명동길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골목 산책은 분위기가 색다르다. 작은 분식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간식 골목을 지나면 망대 골목 입구다. 망대 골목은 권진규 조각가가 춘천고등학교 재학 시절 하숙하며 학창 시절을 보내고, 박수근 화백이 은사가 있던 춘천에 와서 유화를 그리고 나무를 시장에 내다 팔았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중앙시장 상인들이 망대 인근 비탈에 집을 지어 살면서 달동네가 형성됐다고 한다. 망대가 있던 언덕 끝에 오르면 약사동 일대 거리와 공지천이 내려다보인다. 망대길과 나란히 늘어선 약사리고개는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고갯길에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죽림동 성당이 자리 잡았다. 죽림동 성당은 한국전쟁 때도 포화로부터 지켜 낸 곳이다.
춘천을 더 높은 곳에서 조망하려면 구봉산 전망대로 향한다. 구봉산 정상에는 카페 거리가 조성돼 있다. 카페 발코니에 서면 춘천 시내와 의암호 전경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이곳은 격무에 지친 춘천교도소 직원들이 가을 힐링 코스로 방문하기 좋다.
애니메이션박물관과 김유정문학촌
도시를 에워싼 북한강과 호수는 춘천 낭만 여행의 훌륭한 조력자다. 어느 물길을 서성거려도 탐스러운 경치를 만날 수 있다. 소양강처녀상이 들어선 의암호에는 햇빛이 은은하게 부서진다.
최근 춘천에서 가족 나들이객에게 사랑받는 공간은 중도 관광지 건너 애니메이션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만화 속에 등장하는 세계 각국의 캐릭터들이 전시돼 있으며 각종 체험거리도 가득하다. 애니메이션박물관 옆 새롭게 단장한 토이로봇관은 로봇 권투, 로봇 댄스 체험 등이 인기다. 춘천교도소 직원들이 자녀와 함께 방문하기 좋은 곳으로,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보길 권한다.
강길 따라 메밀꽃 피어나는 강촌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초가을 향취가 완연하다. 폐철로가 남은 강촌행 길목에는 김유정역이 들어서 있다. 소설가 김유정의 옛 삶터를 기려 역과 마을에 소설가의 이름을 붙였다. 김유정 문학촌에는 작가의 고향인 신동면 실레마을의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봄봄> <동백꽃> 등 소설 속 장면을 재현한 동상을 구경하고, 작품의 배경이 된 실레이야기길을 둘러본다. 김유정역에 조성된 레일파크는 책 조형물 카페, 강촌역을 오가는 것으로 오붓한 가을 휴식을 돕는다.
‘춘천만의 맛’ 닭갈비 & 막국수
춘천은 닭갈비와 막국수의 메카다. 먼저 닭갈비는 맛과 개성이 제각각이다. 매콤한 맛의 고추장 닭갈비가 대세지만 달콤하고 짭조름한 간장 닭갈비, 담백한 소금 닭갈비도 취향에 따라 맛볼 수 있다. 최근에는 붐비는 도심 명동을 피해 외지인들이 온의동 닭갈비 골목을 찾고 있다. 신북읍 ‘토담 숯불닭갈비’, 조양동 ‘명동산골닭갈비’, 후평동 ‘우성닭갈비’가 닭갈비 식당으로 잘 알려진 곳들이다.
닭갈비와 어깨를 견주는 춘천의 음식은 막국수다. 춘천에 막국수체험박물관이 별도로 있을 정도다. 춘천 대표 막국수 가게인 약사동 남부 막국수는 문을 연 지 50년을 넘어섰다. 고춧가루로 간하고, 국물을 자작하게 부어 비벼 먹는 독특한 전통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 신북읍 일대의 ‘샘밭막국수’, ‘유포리막국수’, ‘오수물막국수’ 등도 쌉쌀한 메밀과 동치미 국물을 내세운 춘천 막국수의 계보를 잇는 명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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