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권미선(라디오 작가)
유안진 시인은 ‘무엇을 위해 시를 써왔나’라는 시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미국의 동서 횡단철도 개통 20주년 기념식장에서 / 종신 철도원으로 표창받는 남자에게 / 한 노동자가 다가와 인사했다. / 이봐 윌리, 나야 몰라보겠나? / 20년 전에 우리 일당 5불을 위해 일했잖아 // 그랬나? 그때도 난 철도가 좋아 일했던 것 같은데” 오래전, 두 명의 철도 노동자는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에 대한 태도와 생각은 달랐습니다. 한 사람은 하루하루 일당을 받기 위해 일했고, 다른 한 사람은 철도가 좋아서 일했습니다. 둘 다 공사 현장에서 힘들게 일했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넘쳤던 남자는 세월이 지나 종신 철도원이 됐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이 있고, 별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자기 일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찮아 보일지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 윤오영 작가의 수필 <방망이 깎던 노인>에 등장하는 노인이 그렇습니다.
작가는 퇴근길에 우연히 방망이 깎는 어르신을 발견하고는 하나 사 가기로 합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순탄치가 않습니다. 가격이 너무 비싼 것 같아서 값을 좀 깎으려니 어르신은 에누리 같은 건 못 해 준다고 딱 잘라 거절합니다. 싫으면 다른 데 가서 사라는 무뚝뚝한 반응에 작가는 그만 머쓱해지고 말죠. 흥정은 실패하고 그냥 제값 주고 방망이를 사기로 한 작가. 그런데 어르신의 일하는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립니다. 보기엔 다 된 것 같은데 방망이 깎은 걸 살펴보고 다듬고, 다시 살펴보고 다듬기를 수십 차례. 작가는 차 시간이 다 돼서 그냥 가져가겠다고 말해 보지만, 어르신은 예술 작품을 만드는 장인처럼 작업에만 열중합니다.
물건을 사는 사람이 괜찮다는데 왜 그렇게나 열심인지 작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자꾸 재촉하는 그에게 어르신은 물건은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법이라며, 차라리 팔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방망이가 완성되길 기다린 작가는 버스까지 놓치고 한참 뒤에야 완성품을 받아 들게 됩니다. 겨우 방망이 하나에 그렇게 유별나게 굴다니, 작가는 기분이 언짢아져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아내의 반응은 달랐습니다. 이렇게 잘 깎기가 쉽지 않은데 딱 알맞게 좋은 걸 사 왔다며 좋아하는 겁니다. 어르신이 장인의 솜씨로 방망이를 깎았다는 걸 깨닫게 되자, 작가는 재촉하고 불평했던 게 미안해집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겨우 방망이 하나였을지 몰라도 어르신에게는 아니었던 거죠. 그런데 만약 누군가 자신이 하는 일을 ‘겨우 이런 일’이라는 생각으로 대충 해 버린다면, 애정 없이 그냥 기계적으로 일한다면, 시간 때우기 식으로 억지로 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미국의 한 트럭 배송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유난히 배송 사고가 잦았습니다. 물량의 절반 이상이 잘못 배송될 정도였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살펴본 전문가는 작업자들의 실수가 너무 잦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들은 작업을 꼼꼼하게 신경 쓰지 않았고 적당히 대충대충 일하는 게 습관처럼 돼 있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전문가가 내놓은 방안은 조금 독특했습니다. 그동안 회사에서는 작업자들을 일꾼이나 트럭 운전사로 부르곤 했는데, 그들에 대한 호칭을 모두 마스터로 바꿔 부르라는 거였습니다. 호칭이 그렇게 중요할까 싶었지만,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호칭을 바꾼 지 한 달 만에 배송 실수가 10%로 줄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그냥 일꾼이라고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스터로 불리기 시작하자 자신을 한 분야의 장인으로 생각하고 실제 장인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작업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이고 세세하게 살펴보면서 실수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나는 지금 장인으로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라는 자부심은 일에 대한 태도와 마음가짐을 바꿔 놓았습니다. 그렇게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자부심이 모여 회사 전체가 달라졌습니다.
‘나 하나 꽃 피어’라는 시에서 조동화 시인은 말합니다. “나 하나 꽃 피어 /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 말하지 말아라. /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 결국 풀밭이 온통 /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내가 꽃필 때 그것은 겨우 한 송이의 꽃이 아닙니다. 내가 있어 풀밭이 꽃밭이 될 수 있다는 마음,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그 마음이 내가 있는 자리를 빛나게 합니다. 하나하나 빛나는 그 마음들이 모여 아름다운 꽃밭을 만듭니다. 교정본부 웹진 구독신청을 하시는 독자분들에게 매월 흥미롭고 알찬 정보가 담긴 뉴스레터를 발송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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