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교정가족 여러분!
저는 오늘 정들었던 교정현장을 떠나고자 합니다.
1989년 6월, 설렘과 두려움으로 첫 부임지였던 광주교도소 외정문을 통과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순간순간 힘든 적도 많았지만, 여러분들의 사랑과 응원 덕분에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32년의 여정을 함께 해주신 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작년, 이 무렵 저는 대내외적으로 요구되고 있는 변화와 개혁의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법치, 공정, 신뢰, 소통을 강조해 조직 발전에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교정본부장에 부임했습니다.
부임 후 ‘변화를 향한 믿음, 함께 만들어가는 국민안전’ 실현을 목표로 국민이 신뢰하고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 추진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 대체복무제의 성공적 정착, 정신질환 수용자 관리 매뉴얼 마련, 접견 제도 및 직원 근무환경 개선, 인사 적체 해소를 위한 공로연수제도 개선,
인권 친화적 교정시설 표준 설계안 마련 등 소기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직원의 숙원사항이었던 수용자 출정조사 방식 개선과 근무체계 개편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떠나게 되어 송구한 마음입니다. 그동안 진행돼 왔던 사안인 만큼 후임 본부장님께서 좋은 결과를
내주시리라 믿습니다.
존경하는 교정가족 여러분!
지난해 12월, 우리는 서울동부구치소 집단감염이라는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어려운 상황을 마주했습니다.
매 순간 어렵고 힘든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개인보다는 조직을 먼저 생각하는 직원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과 협조 덕분에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소임을 다해 주신 직원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떠나게 되어 무거운 마음이지만, 서울동부구치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이후 교정을 바라보는 국민과 언론의 부정적 시각을 차단하고 조직이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용퇴의 길을 택했습니다.
본부장으로서 여러분들을 위해 제가 하고자 했고,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간 우리는 구성원 간 불신과 소통 부재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제복 공무원 특유의 상명하복 문화 속에서 그간 억눌려 왔던 자유로운 의견들이 분출되며,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조직은 남다른 응집력과 개개인의 탁월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신임 본부장님이 공공안전 확립과 교정행정 인권 가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수처작주(隨處作主)의 자세로 서로
화합하고 지혜와 역량을 모아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사랑하는 교정가족 여러분!
항상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이기도 합니다.
막상 직분을 내려놓으려 하니 그동안의 성과보다는 아쉬움과 미련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업무 수행에 여념이 없던 직원들에 대한 격려에 인색하지는 않았는지, 현장 직원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정성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개개인의 고충에 귀 기울이지 못한 점은 없는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됩니다
받은 것은 넘치는데 드릴 것은 작은 마음뿐이라 미안합니다.
그렇더라도 꽤 멀리 왔기에, 또 오래 머물렀기에 만족하며 떠납니다.
해질녘 길을 걷다가, 한바탕 꿈에서 깨어나 또 여러분들이 생각날지도 모릅니다. 이제 가슴속에 ‘교정’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담고 여러분들을 응원하며 조력자로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남은
삶을 경주해 가겠습니다.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어 진정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21. 6. 30.
제8대 교정본부장 이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