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세상을 지키는 따뜻한 사람들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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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것의 매력을
익숙하게 전하는 사람들

밴드 ‘이날치’
바야흐로 잘 섞어야 터지는 시대다. 경계를 분명히 했던 독자적인 영역이 어깨를 겯고 서로의 장점을 결합해 시너지를 발휘하는 게 일종의 트렌드로 정착했다. 기업과 기업, 기술과 기술은 말할 것도 없고 교집합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장르와 사람들이 협업을 통해 흥미로운 의외성을 선보이는 것. ‘1일 1범’으로 세계인을 어깨춤 추게 한 ‘이날치’의 흥행도 알고 보면 탁월한 협업, 즉, 영리하게 잘 섞었기에 가능했다.
민경미 사진 김인규
밴드 ‘이날치’
이날치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이름난 명창 이날치에서 가져왔다. 2019년 5월 서울 이태원에서 단독 공연 <들썩들썩 수궁가>를 진행했고, 정규 1집 <수궁가>에 이어 싱글 ‘여보나리’를 냈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흥겨운 춤을 결합한 네이버 온스테이지의 2019년 온라인 공연은 당시 조회 수 1,421만 회를 기록했다. 또 서울, 부산, 전주 등 전국 도시를 돌며 찍은 한국 관광 해외 홍보 영상 <Feel the Rhythm of Korea>는 총 조회 수가 1억 회를 넘는다.
각자의 내공이 섞여 이날치로 날다
“세상에 펑! 하고 일어나는 일은 없어요.” 배우 윤여정 씨가 지난 4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이 말은 인기란 갑자기 터지는 것처럼 보여도 그간의 노력이 깔려 있을 때 가능하단 의미를 담았다. 그런데 2019년 등장한 밴드 이날치의 존재감과 인기는 예고편도 없이 한순간 폭죽처럼 터졌다. 동시에 제각각의 이유로 쪼그라들었거나 애초 있는지도 몰랐던 흥이 이날치라는 알람에 일제히 깨어났다. 대표곡 ‘범 내려온다’의 후렴구인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는 돌림노래처럼 이 입 저 입에서 홀린 듯 흘러나왔고 그 리듬에 전 세계인의 어깨가 들썩였다. ‘희한하게 익숙하고 아름답게 낯설다’고 말한 BBC라디오를 비롯해 이날치를 조명하는 언론의 평도 이전의 문장과는 사뭇 결이 달랐다. ‘전에 있던 것으로 전에 없던 것을 만들다’, ‘K흥을 이끈 국악밴드’, ‘범 내려오고 흥 올라왔다’ 등이 대표적.
소리꾼 안이호 씨는 여기에 최근 한 걸그룹 멤버가 유튜브에서 이날치를 ‘사람들 속에 숨어 있던 끼를 열어 주는 오프너’라고 표현한 것이 유독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바라보는 이날치 말고, 이날치는 이날치를 어떻게 정의할까. 베이스 연주자이자 프로듀서로 밴드를 이끄는 장영규 감독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의 매력을 익숙하게 들려주는 사람들”이라고 운을 뗀 후 다음 말을 이어 붙였다.
“이날치는 전통음악인 판소리로 대중음악을 하는 밴드예요. 그렇다고 판소리에 비중을 더 싣는 게 아니라 각각의 장점을 파악해 잘 드러나도록 섞죠. 그래야 빛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멤버 각자가 오랜 기간 연마해 온 장점을 결합해 판소리로 만든 ‘춤출 수 있는 팝 음악’이 이날치의 색깔이죠.”
그러니까 세상에 펑! 하고 일어나는 일은 없고, 이날치 또한 멤버 저마다의 내공이 이날치라는 이름으로 잘 버무려져 특유의 신묘하고 맛깔스러운 리듬과 비트, 재미와 인기로 전무후무한 K흥을 터트린 것이다.
탁월한 협업자들의 의기투합
베이스(장영규), 드럼(이철희) 두 악기와 네 명의 소리꾼(안이호, 권송희, 이나래, 신유진)으로 구성된 이날치는 2018년 말 ‘수궁가’를 모티브로 한 음악극 <드라곤 킹(용왕)>에서 함께 작업한 것이 인연이 됐다. 다만 여느 밴드가 이름을 갖고 나름의 계획을 세워 활동에 나서는 것과 달리 이날치는 ‘공연해 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다가 공연계의 러브콜이 쇄도하는 등 일사천리로 일이 커지면서 뒤늦게 이날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럼에도 베이스와 드럼이 만들어 내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리듬에 네 보컬의 소리가 원래 한 몸이었던 것처럼 맛깔스럽게 잘 붙는 이유는 멤버들 모두 풍부한 협업의 경험을 쌓은 덕분. 그중에서도 장영규 감독은 불교음악과 가면극, 궁중음악 등을 다룬 ‘비빙’, 민요와 록을 접목한 ‘씽씽’ 등 국악과 현대음악을 섞은 밴드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2013년에는 ‘탁월한 협업자’라는 제목으로 일민미술관에서 전시까지 했는데, 예전부터 연극, 무용, 미술, 영화 분야의 예술가들과 한데 섞여 놀면서 확장성과 더불어 협업의 묘미를 터득하게 됐다는 것. 이철희 드러머는 그런 장영규 감독과 ‘어어부 프로젝트’와 ‘씽씽’을 함께하며 자연스레 이날치까지 오게 됐다. 장르를 섞는 데서 새로운 재미를 발견한 건 네 명의 소리꾼도 마찬가지. 이들은 모두 소리꾼으로서 소위 엘리트 코스라 불리는 교육과정을 거쳤지만, 뮤지컬과 음악극 등 타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자신의 영역이 넓어지고 이후 삶의 궤적이 바뀌는 경험을 했다. 이처럼 협업에 대한 멤버들의 긍정적인 경험과 열린 마음이 이날치의 동력으로 작용한 것. 장영규 감독은 분야는 다르지만 교정공무원에게도 이런 시각이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며 조언을 건넸다.
“장르를 섞고 협업할 때 중요한 점 중 하나는 필터를 걷어 내는 거예요. 예를 들어 보통은 국악이나 클래식을 엄격한 장르로 구분하지만 저는 예전부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이들 장르도 대중적인 재료로 보는 훈련을 해 왔어요. 같은 맥락에서 교정공무원도 관계에서 필터를 제거하면 좀 더 마음을 열고 수용 범위를 넓힐 수 있지 않을까요?”
수궁가에 별주부가 있다면 우리 사회엔 교정공무원이
수용자들이 직접 만든 휴대폰 거치대와 스피커, 펜 선물에 돌아가며 나무 향을 맡고 성능에 흡족해하던 멤버들은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교정시설과 교정공무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는 말과 함께 따뜻한 응원을 잊지 않았다.
“우리가 누리는 안전하고 편안한 일상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 주시는 누군가의 도움 덕분이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제가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이유도 교정공무원분들 덕분이라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 수 있게 됐어요.”(신유진)
“저희 음악에 등장하는 별주부도 감옥을 지키는 벼슬 중 하나인 전옥주부로, 지금의 교정공무원이죠. ‘수궁가’에서는 감옥을 관리하던 별주부가 용왕이 병들어 나라에 큰 우환이 들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토끼를 잡으러 육지에 다녀오고 토끼의 꾀에 넘어가기도 하지만, 결국엔 별주부의 충정 덕분에 용왕의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로 끝나거든요. 판소리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어느 곳에든 병들거나 곪은 부분은 있게 마련이고, 그런 만큼 교정공무원처럼 그 지점을 보듬고 새살이 돋게 하는 역할을 해 주는 분들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안이호)
소리꾼답게 판소리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교정공무원에게 신박한 응원을 건넨 이날치의 다음 행보는 어떨까. 미리 계획을 세워 두고 움직이는 밴드가 아니므로 사실 이날치가 어느 지점에서 어떤 음악을 터트릴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확실한 건 한 시대를 몰아쳤던 ‘수궁가’를 비롯해 판소리 다섯 마당에서 가져온 이야기가 아닌 요즘 시대의 이야기를 만들자는 데까지는 멤버들의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 그래서 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을 더욱 예민하게 감각하고 있다는 이날치의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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