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재형(청주교도소 교사)
요즘 나의 머릿속 화두는 온통 ‘감사’다. 이런 날은 오지 않을 거라 확신했었다. 불과 1년 6개월 전까지는. 당시 나의 내면에는 절망, 실망, 분노, 짜증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나의 삶에서 과거의 부정적인 생각은 사라졌다. ‘감사’라는 단어를 통해 강인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충격으로 나의 삶은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 이 생생한 스토리를 통해 진정으로 내가 깨달은 것을 교정 가족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한다.
때는 1년 6개월 전 추석 무렵이었다. 누구에게나 설레는 명절, 나 또한 아름다운 아내와 아홉 살 된 예쁜 공주님과 함께 처가로 향했다. 가족들의 환대 속에서 행복감을 만끽하며 짧지만 그동안 고향에 내려가 보지 못한 죄송함을 잊을 만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야간 근무를 위해 청주로 복귀를 해야 했다. 신나게 웃고 떠드느라 몸이 달아올랐는지 조금 피곤이 몰려왔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눈치 빠른 아내는 “야간 근무해야 하는데 피곤하면 안 되니까 편히 쉬면서 가요”라며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고, 아내의 진심 어린 관심에 기분이 좋아 뒷자리에 몸을 실었다.
명절이라 고속도로는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다.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 생각했는데 깨어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러나 이정표는 아직 대전 IC도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시간은 오후 3시 10분, 야간 근무 복귀 시간은 오후 5시. 이 정도 속도라면 지각이겠다 싶어 아내에게 잠시 버스전용차로로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오후 4시가 지났고 신탄진 IC 부근을 간신히 통과했다. 늦으면 명절날 퇴근을 기다리는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칠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조급함이 들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아내도 덩달아 조급함이 얼굴에 묻어나기 시작했다.
아내는 교대 시간 내에 도착해야 한다는 마음에 차선을 이리저리 변경하다가 순간 앞에 있던 버스와 충돌하고 말았다. “쾅! 쾅쾅!” 연이어 벌어진 충돌에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다. 누군가 나를 흔들어 눈을 떠 보니 아내는 의식을 잃고 움직임이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의식이 있고 크게 다친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아내를 흔들어 봤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차량 통제가 시작되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아내를 운전석에서 빼내 응급처치를 진행했다.
그래도 의식을 되찾지 못한 아내를 보며 망연자실해 울고불고할 때였다. 사고 피해 버스에 타고 계시던 현직 의사분이 능수능란하게 응급처치를 해 준 것이다.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호흡이 잡혔고 의식도 곧 돌아올 테니 안심하라는 말에 너무나 감사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수십 번 되뇌며, 이윽고 달려온 구급차에 올라타니 아내의 의식이 돌아왔다.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나는 아이와 아내의 손을 꼭 잡고서 속으로 생각했다. ‘다시 한번 삶을 살아가게 기회를 주심에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일 하며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고가 난 지 한 달 후, 우리 가족은 누가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권하지도 시킨 것도 아닌데 노트에 감사 목록을 적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평소에 느꼈던 감사함에 대해 적었다. 그러자 놀라움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우리 가족이 감사 목록을 작성하고 서로 다독여 주는 사이 집안 분위기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감사 목록을 쓰기 전까지 나는 야간 근무에 따른 피로감을, 아내는 아이를 보살피며 쌓인 피로감을, 그리고 아이는 다양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부정적인 상황의 반복은 가족끼리 대화하는 시간을 줄였고 집안 분위기를 침체시켰다. 그런데 놀랍게도 감사 목록을 작성한 이후부터 집안에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놀랄 노 자가 아니겠는가!
감사함의 위대함을 알고 나서부터 일상에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큰 마법을 부리는지를 깨닫게 됐다. 실제로 내가 현재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감사함을 느끼자 지금까지 고장 한 번 없이 잘 운행되고 있다. 또 아이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에게 아이를 진심으로 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생각하니, 이후에 아이의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처럼 놀라운 일들이 너무나 많다. 내가 한 것이라곤 감사한 일밖에 없는데 이렇게 놀라운 일들이 생길 수 있다니, 너무나 경이롭지 않은가!
코로나19 이후에 우리 모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만큼 작은 것에서 감사함을 찾아 진심을 다해 보면 어떨까? 비록 아직은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든든한 사회가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끈끈한 정으로 하나 되는 회사가 있어 오늘의 내가 있다. 그렇기에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살 이유가 늘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분이 생각의 변화를 통해 감사함 뒤에 찾아오는 놀라움을 경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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