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려움에도 간절히 지키고 싶은 것
이탈리아 배우이자 감독인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는 필자가 자주 추천하는 가족 영화다. 현재 어려움을 겪는 가족을 만났을 때 함께 힘을 내기를 바라며 권하곤 한다. 베니니는 직접 이 영화를 감독하고 주연도 맡았다. 때는 나치가 인류를 비참으로 내몰던 제2차 세계대전 말이다. 어린 아들 조수아와 나치 수용소에 갇힌 아버지 귀도는 아들의 동심을 지키기 위해 동료들과 끔찍한 수용소를 마치 지상낙원처럼 꾸미는 연기를 펼친다. 귀도의 노력 덕에 조수아는 수용소에서도 동심과 행복을 잃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도망치던 부자는 불행히도 나치 군인에게 발각된다. 귀도는 군인에게 총살을 당하기 직전 조수아 앞에서 한 번 더 눈물겨운 연기를 펼친다. 조수아가 마지막까지 아빠의 미소를 기억하게 하는 연기였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어려움을 무릅쓰면서도 지키고 싶은 대상이다.
함께 할 시간이 너무 짧은 우리
우리는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서 ‘가족시간 계산기’를 검색하면, 가상으로 나와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줘 쉽게 알 수 있다. 계산에 따른 시간은 소름 끼칠 정도로 짧다. 특히 사랑하는 내 부모나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몇 달이 채 되지 않는다. 우리에겐 이런 자각이 필요하다. 소중한 이와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하지만 세상에는 웃음이 사라진 가족도 있다. 어떤 가족은 서로 무심하거나 반목하고, 때로는 오랫동안 보지 않으며 지내기까지 한다. 같은 공간에 함께 산다고 안심할 것도 아니다. 가족 누군가와 하루 10분, 20분도 살가운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지나는 날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심리 용어 가운데 ‘역기능 가족’이란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가족 구성원에게 충족돼야 할 여러 가지를 제대로 채워 주지 못하는 가족을 뜻한다. 가족끼리 무심히 지내는 것을 두고서 역기능 가족이라 할 수는 없지만, 가족 사이에 소통과 교감이 줄면 언제든 가족 갈등이나 가족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가족의 마음을 나누는 치유서
그렇다면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존속하고 결속하려면 어떤 것이 충족돼야 할까? 필자가 꼽는 필수 조건은 심리학자 조지 베일런트가 말하는 인간의 영성과 거의 일치한다. 베일런트는 “인간은 정교한 사회적 결속에 의해 생존”해 왔고, “무조건적인 애착, 용서, 감사, 다정한 시선 마주치기가 그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종이 가질 수 없는 인간의 영성으로 사랑, 용서, 희망, 기쁨, 연민, 믿음을 제시한다. 가족끼리 이렇듯 선한 마음을 나누지 않는다면 그들은 하루도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베일런트의 책은 일반인이 읽기에 조금 어렵다.
필자가 하는 독서 치료에서는 내담자가 직면한 삶의 숙제를 풀기 위해 참고할 만한, 당사자에게 적합한 ‘치유서’를 여러 권 제시한다. 가족 상담을 할 때면 유독 자주 권유하는 치유서가 있다. 부부 갈등이 심할 때는 존 가트맨·낸 실버의 <가트맨의 부부 감정 치유>와 <행복한 결혼을 위한 7원칙>을, 가족 간의 갈등이 심한 경우에는 대니얼 고틀립의 <가족의 목소리>나 스콧 할츠만의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 같은 치유서를 자주 권한다.
치유서가 되려면 실용서나 자기 계발서처럼 필요한 것만 콕 집어 말하는 책이어서는 곤란하다. 우리의 깊은 내면을 다독이고 움직일 만한 감동과 깨달음도 넉넉히 담고 있어야 한다. 여러 책 중에 특히 스콧 할츠만의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은 거의 모든 가족 상담에서 목차와 내용까지 세심하게 설명할 때가 많다. 이 책에는 행복하고 단단한 가족이라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8가지 조건이 나온다.
행복한 가족의 8가지 조건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가 함께 행복과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8가지가 충족돼야 한다. 첫째, 가족은 가족에 관한 자기 가치인 ‘가족 가치관’을 합의하고 잘 만들어 나가야 한다. 많은 가족이 구성원의 가치관 차이 때문에 갈등을 빚는다. 각자의 인생관, 세계관은 달라야겠지만, 가족 가치관만큼은 합치점과 공감대가 필요하다. 가족 가치관이 서로 다르면 많은 지점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둘째는 ‘헌신과 소통’이다. 가족 구성원은 서로에게 헌신하고 항상 소통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 평화적인 소통이 사라지는 것은 가족이 붕괴되는 일이기도 하다.
셋째는 ‘지원과 지지’다. 이는 단지 물질적 공여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것 외에도 정서적으로 서로 지지하고 어려운 일을 나누는 관계여야 한다. 넷째는 ‘자녀 교육’이다. 구성원 모두가 자녀의 미래를 위해, 서로의 성장을 위해 자녀 교육에 힘써야 한다. 다섯째는 ‘융화’다. 이는 무조건적인 의견 일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다른 생각을 갖더라도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여섯째는 같은 맥락에서 ‘갈등 해결’이다. 가족은 수시로 내적·외적 갈등과 직면한다. 서로 힘을 합쳐 문제를 헤쳐 나갈 때 가족의 평화도 유지된다.
일곱째는 ‘회복’이다. 이는 갈등 해결 이후에 동반돼야 할 조건이다. 갈등이 생겼을 때 슬기롭게 해결하고 다시 전처럼 회복할 수 있는 가족의 힘을 갖춰야 한다. 여덟째는 나머지와는 조금 구분되는 요소지만, 가족의 본원적 기능과 관련되는 ‘휴식’이다. 가족이 존재하는 큰 이유이기도 하다.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이 힘들어할 때 서로 도와 그 사람이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휴식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이 충족될 때 가족은 행복해질 수 있다. 가정의 달, 우리 모두 가족의 조건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