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은 시간 여행의 도시다. 원도심에는 일제강점기 시절의 가옥과 건축물,
빛바랜 골목들이 남아 있다.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외곽으로 달리면
섬들의 군락인 고군산군도가 펼쳐진다. 군산교도소는 ‘바다와 향수의 도시’
군산의 길목에 자리해 있다.
글 ·
사진 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과거의 시간을 간직한 골목과 공간
군산교도소는 군산의 시간 여행과 궤적을 같이한다. 월명산 아래 원도심 곳곳에는 옛 흔적이 묻어난다. 군산은 구한말 일제강점기 당시 쌀 수탈을 위한 조계지(외국인 거주지)로 쓰인 시린 과거를 지닌
도시다. 신흥동과 월명동 일대에는 일본풍 집들이 지난날을 투영하며 남아 있다.
신흥동 일본인 가옥(히로쓰 가옥)은 복도와 다다미방, 일본 정원이 고스란히 보존된 국가등록문화재다. 일본인 포목상이 지은 2층 목조주택에서 영화 <타짜>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를 촬영했다. 인근에는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가 위치해 있으며, 적산가옥 고우당은 소담스러운 정원을 갖춘 게스트하우스로 변신했다.
이 일대 골목은 산책하며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소박한 카페와 숙소도 옹기종기 이어진다. 골목을 배회하다 보면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배경이 된 ‘초원사진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속 한석규가 운영했던 사진관은 옛 모습 그대로 인증 사진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온기 짙은 근대 문화유산 거리
군산은 바다 향기가 묻어나는 도시다. 원도심에서 내려 군산 내항과 맞닿은 거리에서 근대 건축물들과 조우한다. 군산 바다와 나란히 달리는 해망로(장미동) 일대는 근대 문화유산 거리가 조성돼 있다.
옛 군산세관, 군산근대역사박물관, 근대미술관 등 고풍스러운 건물은 100년 세월을 차곡차곡 담아낸다.
붉은색 벽돌 건물에 동판을 올린 옛 군산세관 본관은 철도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과 함께 국내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로 꼽히는 곳이다. 본관 뒤편에는 세관 창고를 리모델링한 인문학 카페가 문을
열었다.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는 군산의 세월이 간직돼 있으며 1930년대 번화가를 재현한 체험 공간은 특히 인기가 높다.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유흥 주점으로 방치돼 오다가 근대건축관으로
탈바꿈했다. 구 일본 제18은행 건물은 레트로 분위기의 카페를 동반한 근대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군산 내항 일대는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경암동 철길마을 교복 나들이
경암동 철길마을은 세대를 뛰어넘는 추억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신문 용지를 나르기 위해 공장과 군산역 사이에 2.5km 철로가 개설됐는데, 1970년대 그 주변에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며
서민들이 거주했다. 2008년 철길이 닫히고 황량해진 공간에 상점들이 들어서며 온기를 되찾고 있다.
경암동 철길마을은 주말이면 북적거리는 군산의 명소로 변신 중이다. 방문객들은 친구들과 옛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데 여념이 없다. 폐철로에는 교복 대여소와 흑백사진을 촬영해 주는 스튜디오가
문전성시를 이룬다. 옛 군것질거리인 달고나, 뽑기 등을 직접 만들어 먹는 신나는 체험도 즐길 수 있다.
세대 차이가 나는 군산교도소 선·후배 직원들이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
만화 속 주인공들이 담장을 채우고, 철로 종착점에는 열차
조형물이 옛 군산으로의 추억 여행을 돕는다.
섬과 뭍이 연결된 고군산군도
최근 군산 여행의 필수 코스가 된 곳은 고군산군도다. 섬과 뭍이 다리로 연결되면서 2층 버스를 타고 고군산군도 깊숙이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새만금방조제를 따라 고군산군도로 가는 길목에는 바다와
간척지가 드넓게 펼쳐진다.
고군산군도는 57개의 유·무인도로 이뤄진 섬의 군락이다. ‘신선이 노닐던 섬’인 선유도가 대표 섬이고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 수려한 해변과 어촌 풍경을 간직한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고군산대교 완공으로 신시도와 무녀도가 연결되며 고군산군도는 뭍과 한 몸이 됐다.
장자도와 이어진 대장도 대장봉(142m)에 오르면 섬과 다리, 포구와 해변이 어우러진 고군산군도가 한눈에 담긴다. 장자도 앞바다는 예전 조기잡이 고깃배들이 밤에 불을 켜고 장관을 이뤘던
‘장자어화’의 현장이다.
선유도 명사십리 자전거 하이킹
고군산군도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둘러봐야 진면목이 전해진다. 선유도에 접어들면 명사십리 해변에 새롭게 솟은 전망대와 집라인이 시선을 끈다. 집라인을 타면 명사십리 해변을 가로질러
솔섬까지 700m를 새처럼 날 수 있다. 명사십리 해변의 일몰은 ‘선유낙조’로 불리며 고군산군도의 으뜸 풍경으로 꼽힌다.
명사십리 해변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선유도의 섬 골목을 누비며 기도등대를 방문하고 남악리마을 몽돌 해변에도 들러 본다. 사람들이 밀려드는 명사십리 해변과는 또 다른 섬마을
풍취가 전해진다.
무녀도 끝자락의 작은 섬인 쥐똥섬은 간조 때 물이 빠지면 바닷길이 드러나는 곳으로 고군산대교 옆에 자리했다. 쥐똥섬 앞에는 섬 주민들이 운영하는 스쿨버스를 개조한 노란색 카페버스가 봄날의 운치를
더한다.
수십 년 세월의 별미 ‘군산 짜장면’
군산 음식 역시 추억과 함께 맛본다. 군산의 오래된 별미 중 하나가 짜장면으로 주말이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물짜장, 고추짜장, 부추짜장, 볶음짜장 등 종류도 다채롭다.
군산 짜장면의 세월을 자랑하는 곳은 ‘빈해원’이다.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중화요리 식당으로, 식당 안은 중화권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국적이고 앤티크한 분위기다. 60년을 넘어섰으며 각종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빈해원 짜장면은 전분에 소스가 많이 들어가 걸쭉한 것이 특징이다. 전라북도식 짜장면으로, 일명 ‘물짜장’으로 불린다.
군산 ‘지린성’은 눈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매운 고추짜장으로 명성이 높다. ‘성누정’은 면에 부추가 들어간 25년 세월의 부추짜장을 테이블 위에 올린다. ‘국제반점’과 ‘복성루’의 볶음짜장, 짬뽕도 군산의 맛으로 유명하다. 이 밖에 국내 최장수 빵집인 이성당과 영국빵집 등 빵집 투어도 군산 나들이객의 단골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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