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바꾸면서까지 사람을 만나야 할까?

박민근(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내향적인 사람들의 고민, ‘인간관계’
세상은 점점 더 외향성을 강조하고, 좋아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SNS에 자신의 멋진 모습을 찍어 올리고, 많은 사람과 어울리고, 밤늦도록 사람들과 뒤섞여 지내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실제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뿐만 아니라 내향적인 사람에 의해서도 움직인다. 내향성이 없다면 큰일이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카를 구스타프 융이 찾아낸 내향성이나 심층 무의식, 페르소나 같은 말도 없을 테고, 예민한 작가였던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읽지 못했을 것이며,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에서 외친 여성의 미래도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은서 씨는 자신의 내향성이 고민이었다. 하지만 은서 씨와의 상담에서 주로 나눈 이야기는 내향성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 내향적인 사람이 가진 장점과 재능이 있으며 그것을 개발하면 더 멋진 삶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자신의 내향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과는 되도록 관계를 맺지 말라는 조언이 주를 이루었다. 내향성에 대한 은서 씨의 생각이 바뀌자 상담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내향성이 걱정이라 성격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타고난 기질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노력해도 힘들다. 그러므로 해결책은 자신의 성격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
내향적인 사람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인간관계다. 사람을 많이 만나야 관계의 기술이 느는 법이니 내향적인 사람은 여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 타인 앞에서 자신을 표현하거나 감정을 드러내기 힘든 것 역시 인간관계를 어렵게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 앞에서 감정을 컨트롤하고 자기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하는 연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표적인 인물인 버락 오바마처럼 연습을 통해 비록 내향적이어도 자기주장을 잘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성격을 무시하고 욕심만으로 인간관계를 늘리는 것은 좋지 않다. 은서 씨에게 했던 조언도 지금까지 맺었던 인간관계를 줄이고 정리하라는 것이었다.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관계는 내향적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사람마다 다른 인간관계의 적정량
자기 한계를 넘어 인간관계를 맺는 것에는 많은 문제가 따른다. 사람마다 인간관계의 적정량이 다르다. 따라서 자신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나의 내향성은 어느 정도이며, 그에 따른 인간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일레인 N. 아론의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이나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 일자 샌드의 <센서티브>, 주디스 올로프의 <나는 초민감자입니다> 같은 책으로 자신의 내향성이나 민감성을 가늠할 수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특히 <타인보다 더 민감한 사람>에는 민감성의 정도를 알아보는 테스트가 나온다. 그중에서 “바쁘게 보낸 날은 침대나 어두운 방 또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로 숨어 들어가 자극을 진정시켜야 한다”라는 문항은 내향성 높은 사람에게 인간관계가 힘든 이유를 가장 잘 설명해 준다. 일레인 N. 아론은 내향성이 강하다면 가급적 사람을 만나지 않거나 적게 만나는 직업이나 직책을 얻으라고까지 조언한다.
관계 중심 사회에서 내향적인 사람이 받는 고통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남의 말이나 상식에 좌우되지 말고, 자기에게 맞는 인간관계를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 꼭 성격 때문이 아니라도 많은 관계는 감당하기 어렵다. 인류학자 로빈 던바에 따르면 아무리 친화성이 높은 사람이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인원은 150명을 넘지 못한다. 그 이상은 뇌가 감당하기 어렵다. 사실 이 150명 역시 얼굴을 아는 정도이며,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20명 정도가 최대치다. 그런데 이는 외향적이고 친화성이 높고 개방적인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내성적이고 민감한 사람이라면 5명 이하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족을 제외하고 2~3명 이상은 돼야 외로움에 시달리지 않는다. 내성적인 사람에게 우울증이 잦은 이유는 이 2~3명이 가까이에 없어서일 때가 많다.
내향성을 강점으로 삼는 인간관계 형성법
내향적 사람의 인간관계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사교술이 아니라 깊은 관계를 지키는 ‘가슴의 대화’를 나누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두 번째는 공적인 자리, 많은 사람 앞에서 감정을 조절하며 자기주장을 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사실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잘 헤아리는 대화는 외향적 사람보다 내향적 사람에게 강점이 있다. 그러므로 그저 주변 사람과 평소대로 속내를 터놓고 자주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문제는 잘 모르는 사람 앞에서, 여러 사람과 어울릴 때 자신 있게 소통하는 일이다.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 대화를 나눌 때 말을 잘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내려놓는다(감정 조절 연습).
• 평소 거울을 보면서 어떤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는 연습을 한다(대화 연습).
• 성격은 바꿀 수 없으니, 진짜 자아 대신 대화를 나눌 페르소나를 만든다(가면 만들기).
• 처음에는 잘 아는 사람부터, 나중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의도한 대화를 나누는 연습을 해 본다(둔감해지기 연습).
• 대화를 나눈 뒤 자책하거나 힘들어하는 나를 다독이는 다양한 위로 방법을 개발한다(자기 격려 기술).

자기주장 기술에 관해 좀 더 배워 보는 것도 좋다. 성공한 배우 가운데는 의외로 내성적이거나 민감한 사람이 많다. 가끔 그들이 방송에서 자신의 성격과 대화, 연기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장면을 접한다. 대개 그 해결책은 충분한 연습이다. 연습하고 연습하면 남들 앞에서도 자신 있는 나를 만들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격이나 자기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는 마음이 굳어져야 한다. 나를 믿어야 남들 앞에서도 떨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무턱대고 대화 연습부터 시작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좀 더 사랑하고 믿는 마음부터 기르는 일이 먼저다. 숱한 역경을 넘어야 했던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했다. “얼굴이 계속 햇빛을 향하도록 하라. 그러면 당신의 그림자를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