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삶의 골목이 공존하다 청주
충청북도 청주로 가는 길목에는 따사로운
온기가 서려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금속활자와 서민들의 삶, 문화적 풍광이 정겹게 어우러진다.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첫발을 내미는 초년생 교도관들의 풋풋함과 청주의 오랜 삶이 어우러지면 진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글 ·
사진 서영진(여행 칼럼니스트)
청주여자교도소가 자리한 청주는 세계유산을 간직한 도시다. 청주 흥덕사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을 인쇄(1377년)한 사연을 지녔다. 옛 절터에는 수려한 활자들로 외관을 채운 청주고인쇄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으며, 고인쇄와 관련된 박물관은 이곳 청주고인쇄박물관이 국내에서 유일하다. 박물관에서는 흥덕사지 출토 유물과 함께 <직지심체요절>의 모든 것을 전시한다. 목판에서 금속활자까지 인쇄 발달 과정도 가상현실로 흥미진진하게 보여 준다. 박물관 옆에는 옛 흥덕사의 금당과 삼층석탑이 복원돼 있다.
박물관에서 운천동을 잇는 길은 청주 시민들에게 ‘운리단길’로 불리는 호젓한 산책로다. 복고풍 카페와 식당 등 레트로 감성 가득한 공간들이 봄날의 분위기를 돋운다.
청주 남쪽으로 내려서면 대청호를 낀 수려한 경치가 펼쳐진다. 대청호 일대는 예전 청원군이었다가 청주에 편입된 과거가 담겨 있다. 대청호 변에 자리한 문의문화재단지는 옛 문의 지역의 유적을 엿볼 수 있는 오붓한 공간이다. 단지 내에는 고인돌 등 선사 유적과 문산관을 비롯한 전통 가옥들이 대청호를 배경으로 원형 그대로 옮겨져 있다. 한편 단지 안에 들어선 대청호미술관에는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돼 전통 단지 내 풍경과 묘한 반전을 이룬다.
20여 년간 대통령의 별장으로 사용된 청남대 역시 대청호 변에 들어서 있다. 역대 5명의 대통령이 휴가와 정국 구상을 위해 ‘남쪽의 따뜻한 청와대’인 청남대를 찾았다. 청남대는 일반에 개방됐으며 대통령이 실제 거주했던 본관 외에 대통령의 생활상을 간직한 대통령역사문화관 등이 주요 볼거리다. 정원에는 주목, 백송 등 정원수와 조형물들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대청호반을 따라 호반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시민들이 선택한 1위 여행지,
상당산성 성벽 길과
운보의 집
호수를 벗어나 청주의 산성 길을 걸으려면 상당산성으로 향한다. 상당산 자락의 상당산성은 청주 시민들이 1순위로 꼽는 대표 여행지다. 상당산성은 원형이 남아 있는 조선 시대 대표 석성으로 높이 4~5m의 성곽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산성에는 정문이자 남문인 공남문을 시작으로 서문, 동문과 2개의 암문이 있다. 상당산성은 두 갈래의 등산로가 봄 산책을 부추긴다. 성곽 아래 숲속으로 향하는 길과 성곽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성벽 길로 나뉜다. 산성의 둘레는 4.2km이며 성 일주에는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상당산성 뒤편으로는 전통 식당가도 조성돼 있다.
상당산을 에돌아 길을 택하면 ‘운보의 집’을 만난다. 운보의 집에는 고풍스러운 한옥을 배경으로 운보 김기창 화백의 미술관이 있고, 곳곳에 조각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운보의 집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청주에는 삶의 흔적이 서린 공간이 곳곳에 남아 있다. 소박한 달동네였던 수암골은 벽화 골목과 일몰 명소로 탈바꿈했다. 구도심에서 우암산 자락으로 향하면 수암골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로 같은 골목을 오가며 만나는 벽화에서는 옛 청주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진다. 수암골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 <카인과 아벨>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수암골과 우암산 순환도로가 만나는 포인트에는 수암골 전망대가 들어서 있다. 해 질 녘 전망대에 오르면 청주의 아늑한 야경이 펼쳐지며, 전망대 주변으로는 카페들도 불을 밝힌다.
구도심에 내려서면 중앙공원에 들려 볼 일이다. 중앙공원에는 1,000년 된 은행나무인 ‘압각수’와 목조 누각인 ‘병마절도사영문’ ‘망선루’ 등이 운치를 더한다. 중앙공원 뒷길은 청주의 명동으로 불리는 성안 길로 연결된다. 성안 길에서는 독립서점 투어 등 새로운 트렌드의 청주 여행을 할 수 있다.
상당구 서문시장은 청주 사람들에게는 향수의 장소다. 버스 터미널이 있던 서문시장 일대는 사람들의 들고남이 잦은 곳이었다. 두툼한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치기 위해 부담 없이 찾던 공간은 터미널이 거여동으로 이전하면서 색다르게 변모했다. 한때 청주 육거리시장 못지않게 번성했던 서문시장에는 삼겹살 특화거리가 조성돼 있다. ‘삼겹살 거리’라는 별도의 타이틀을 지닌 곳은 전국에서 청주가 유일하다.
돼지 캐릭터와 지글지글거리는 불판 소리는 서문시장의 트레이드마크다. 간판에는 돼지 그림이 그려져 있고 골목 한편에는 돼지 모형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 존도 마련돼 있다. 해 질 무렵이면 시장 내 네온사인이 총천연색 조명으로 단장된다. 여행의 묘미는 ‘맛집 투어’와 ‘추억 사진 남기기’라고 말하는 청주여자교도소 직원들에게 안성맞춤인 곳. 초창기 7곳이었던 삼겹살 식당은 15개까지 늘었다.
청주에서는 두툼하게 썬 돼지고기를 간장 소스에 적셔 먹는 게 대세다. 소금을 뿌려 먹는 방법에서 변모해 간장 소스를 곁들여 먹는 방식이 청주식 삼겹살구이의 정석이 됐다. 일본식 소금구이를 뜻하는 ‘시오야키’라는 간판을 내건 청주 삼겹살집에서는 예전부터 독특하게 간장 소스가 함께 나왔다.
사실 간장 소스를 이용하기 시작한 건 수퇘지를 식육으로 사용했던 시절 돼지 잡내를 잡기 위해서였다. 달인 간장은 잡내 제거뿐 아니라 육질을 부드럽게 하는 데도 효과를 냈다. 식당들은 조선간장에 생강, 당귀, 계핏가루, 마늘, 녹찻물 등 10여 가지 재료를 넣어 자신만의 소스 맛을 낸다.
청주 일대의 돼지고기는 예전 궁중에 진상했을 정도로 맛이 유명했다. 얼리지 않은 국내산 생고기를 숙성시켜 사용하는 것은 삼겹살거리 등 청주의 식당들이 지켜오는 규칙이다. 삼겹살은 0.8cm 정도로 두툼하게 썰어 내놓는다.
간장 소스와 함께 청주 삼겹살의 맛을 돕는 음식이 파절이다. 이곳 상인들은 파절이의 유래 역시 청주에서 태동했다고 주장한다. 식초, 설탕, 고추를 넣어 매콤, 달콤하면서도 새콤한 맛을 낸 파절이는 두툼한 삼겹살과 절묘한 궁합을 이룬다. 여기에 묵은지까지 곁들이면 ‘간장 소스 삼겹살+파절이+묵은지’의 청주 삼겹살 삼합이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