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세상을 지키는 따뜻한 사람들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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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끝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획을 긋다

의정부교도소 교감 오대근
‘꾸준히 하면 잘하게 된다’는 가설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 나가는 원동력이 된다. 의정부교도소 오대근 교감 역시 그 믿음 하나로 8년여간 우직하게 서예를 배워 왔다. 그리고 서예 하는 교도관이라는 부캐를 만들어 좋아하는 일에 더 열심히 임하리라 다짐한다.
 양가희 사진  이정도
※ 3월호 ‘부캐를 부탁해’ 코너는 다른 교육생이 없는 서실을 이용해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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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하는 동료를 보며 꺼낸 ‘서예’의 꿈, 이제는 당당한 부캐로 보여 주다
생각이나 바람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의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생각만 하고 실천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각종 조언이 쏟아지는 까닭이다. 여유 시간을 확보하기 힘들 정도로 바빠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막상 시도해 보려니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등등 저마다 핑곗거리도 많다. 의정부교도소 오대근 교감도 마음속에 품은 일을 오랫동안 실천하지 못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신혼 시절이던 1996년에 품게 된 ‘서예를 배우고 싶다’는 바람은 2013년 10월에서야 이루어졌다.
“2013년에 동료들이 음악 동호회에서 악기를 배우고 밴드 활동을 하면서 자기 계발하는 모습을 보고 반성했습니다. 오로지 교도관으로서 수용 관리에만 집중해 왔는데 ‘나는 무얼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생겼죠.”
그렇게 오대근 교감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서예의 꿈’을 꺼냈다. 스승님을 모시고 서예 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거주지 근처의 ‘서실’을 검색해 찾아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인연이 닿은 한국서예협회의 월봉 박서운 선생님 밑에서 8년여간 꾸준히 서예를 배우고 있다. 월봉 박서운 선생님은 오대근 교감을 가리켜 “수제자이자 제일 사랑하는 제자”라고 칭찬한다. 일주일에 4번 이상 서실을 방문해 배우고 또 배운 오대근 교감은 멋진 서예 작품으로 한국서예협회 서울서예대전에서 특선을 차지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몇 개월간 외부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부캐를 부탁해’ 참여는 서예를 향한 오대근 교감의 꿈과 애정을 한층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서실에 와서 오랜만에 붓을 쥐어 보니 감격스럽기도 했을 터. 이 기분 좋은 순간에 월간 <교정>이 오대근 교감을 위해 선물한 붓 4종과 처용먹, 화선지가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오대근 교감은 “뜻밖의 선물에 감동을 받았다. 이 선물이 더욱 열심히 서예 공부에 정진하라는 뜻으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겸손을 잃지 않으며 조심스럽고 차분하게, 옛말의 뜻을 마음에 되새기며 붓을 잡다
“평소 붓글씨를 잘 써 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는 오대근 교감은 붓글씨를 보면 절로 마음이 설레었다고. 그런 로망과 설렘을 간직한 오대근 교감의 부캐 이름은 송진 냄새가 나는 먹의 이름을 따 ‘처용’이라 지었다. 오대근 교감은 테이블 위에 화선지를 가지런히 펼친 다음 붓을 든다.
“오늘 보여 드릴 서예는 적선하는 집안에는 반드시 경복이 있다는 뜻의 ‘적선지가필유여경’과 모든 일을 관대하게 처리하면 복이 들어온다는 뜻의 ‘만사종관 기복자후’입니다. 서예는 옛말의 뜻을 익히고 배우는 과정이지요.”
오대근 교감은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실하게 서예를 배웠음에도 처음 가진 겸손한 자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손놀림으로 한 획, 한 획 긋는 그의 모습은 조심스러웠다. 섣부르지 않게, 글자의 뜻을 마음에 새기며…. 미리 연습해 둔 서예 글자를 손가락으로 따라 그리며 순서를 익히기도 한다. 한 자를 완성할 때마다 벼루에 붓을 문지르며 붓 모양을 다듬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화선지가 움직이지 않도록 잡아 주는 ‘문진’을 들어 화선지를 책상 뒤로 넘긴다. 오대근 교감은 “바른 자세로 글자를 쓰기 위함”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진지함이 오롯이 담긴 글자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오대근 교감. 긴장한 탓에 실수했다며 겸손함을 보이기도 한다.
오대근 교감은 서실에 걸린 자신의 서울서예대전 특선 작품과 이번에 완성한 작품 하나인 ‘적선지가필유여경’을 나란히 놓고는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두 작품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하다.
서예로 깨닫게 된 측은지심과 따뜻함은 교도관으로서 수용자를 변화시키는 비법
박서운 선생님은 오대근 교감이 서예를 시작하면서 마음이 침착해지고 편안해졌음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러자 오대근 교감도 운을 뗀다.
“과거에 보안과 조사실, 기동대, 조사징벌수용동 등에서 근무하며 굉장히 날카롭고 엄격하게 수용자를 대했습니다. 처벌 위주의 수용 관리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박서운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옛 말씀을 공부하면서 처벌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날카로운 마음도 부드러워져서 측은지심과 따뜻함으로 수용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대근 교감은 수용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더니 수용자의 변화도 지켜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따뜻한 마음이 수용자에게 가닿은 것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현재 오대근 교감은 양심적 병역 거부에 따른 대체 복무 요원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가 대원들에게 부드럽고 친근하게 다가갔더니, 이들도 생활관 단체 생활에 잘 적응하고 업무도 잘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오대근 교감은 서예 외에 검도와 자전거, 골프, 축구, 등산 등의 운동도 즐겨 한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취미 활동 가운데 서예로 ‘부캐를 부탁해’에 참여한 이유는 서예를 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서운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서예는 일어서서 공부하는 학문이자 내면의 인(仁)을 단단히 기르는, 체력이 요구되는 예술’이다. 여러 운동을 접하면서 체력을 기르고, 자기 계발을 하며 자부심도 쌓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대근 교감에게 서예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다.
“교정공무원으로서 저의 본분을 잃지 않으며 서예 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평생 서예를 하더라도 자기만의 서체는 완성되기 어렵다고 하는데요. 저만의 서체를 완성한다는 포부와 욕심까지는 아니더라도, 글씨를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평생 실천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다짐을 힘 있는 목소리로 전하는 오대근 교감. 서예를 통해 얻은 따뜻함과 부드러움으로 수용 관리를 이어 나간다는 그는 분명 ‘좋은 교도관’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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