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세상을 지키는 따뜻한 사람들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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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건축은 삶을 나아가게 한다

임진우 건축가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디자인 총괄 사장)
정체와 변화. 코로나19가 휩쓴 1년의 결과값은 아이러니하게도 상반된 두 단어로 함축된다. 이는 우리 사회에 뉴노멀을 제시했고, 건축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령 코로나19 직전까지 건축설계의 화두 중 하나는 ‘공유’였다. 공유 오피스와 셰어 하우스가 붐을 이루었고, 주거와 업무 공간 할 것 없이 개인 공간은 줄이고 공용 공간은 확장했다. 그런데 지난 1년 사이 이 흐름은 정확히 뒤집혀 개인 공간은 중시되고 공유 공간은 기피 대상이 됐다. 이를 도면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직면했을 임진우 건축가는 어떻게 이 변화를 바라보고 수용했을까. 건축가로서 코로나 시대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가 추구하는 건축의 조건, 나아가 교정시설에 대한 ‘신박한’ 생각까지 들어보았다.
 민경미 사진  홍승진
바르게(正), 그리고 건강하게 어우러지는(林) 공간을 짓다

임진우 건축가를 설명할 때 붙박이처럼 따라다니는 몇 가지 연관 단어가 있다. 그중에서도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정림)는 그의 정체성을 선명히 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는 올해로 창립 54년을 맞은 정림에 1986년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입사해 수석디자이너, 설계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6월까지 대표를 역임했다. 그 사이 정림이 낳은 내로라하는 건축가는 물론이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건축가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그는 정림을 이끌었던 6년 동안 창립 50주년과 본사 이전 등 굵직한 이슈를 통해 경영자로서도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물론 대표직에서 물러난 지금도 디자인 총괄 사장으로서 여전히 정림의 한 축을 맡고 있다.
“지난해 새롭게 출범한 N.I.D(Next. Integration. Design)랩을 통해 디자인과 기술의 융합, 정림의 디자인 방향과 브랜딩에 좀 더 집중하고 있어요. 또 여러 건축 관련 협회 활동을 통한 대외적인 역할을 병행하며 정림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실상 여러 매체에 실린 그의 인터뷰는 정림 이야기로 점철돼 있고, 대표 건축물을 거론할 때도 여지없이 정림을 앞세운다. 그에 의하면 정림은 그동안 청와대, 인천국제공항, 국립중앙박물관 등 국가적으로 상징성을 지닌 건축물 외에도 병원, 빌딩, 쇼핑몰, 교회, 아파트 등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러니 정림이 세운 건축물만 한데 모아도 웬만한 생활이 가능한 도시 하나쯤 완성되고도 남을 터. 임진우 건축가는 그간 정림이 설계한 건축물엔 DNA처럼 의식 하나가 공통적으로 스며들어 있다고 말한다.
“정림이 추구하는 건축은 건강한 공간 환경이에요. 특색만 도드라지거나 잔뜩 멋을 부린 건물이 아니라 주변과 어우러지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심죠.”
탈공간 시대에도 건축의 진화는 계속된다

물론 시대와 유기적인 관계인 건축의 특성상 건강한 공간 환경이라는 큰 틀 안에서 코로나19의 변화를 직시하고 수용해 나가고 있다. 콘택트(contact) 시대에 공간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코넥트(connect)가 강화된 탈공간 시대라는 임진우 건축가는 결국 소유와 공유의 흐름은 다시 이어질 거라고 덧붙인다. 다만 코로나19를 경험했으므로 앞으로 건축설계에서 위생과 접촉을 고려한 설계가 필수가 되고, 베란다와 테라스가 버튼 하나로 외부로 확장돼 채광과 환기는 물론 카페 기능을 겸하는 것도 하나의 아이디어라고 덧붙인다. 분명한 건 어떤 상황에서도 건축의 진화는 계속된다는 것. 요즘처럼 급박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이거나 건축가로서의 본질 혹은 감성을 만지작거리고 싶을 때 그가 닿는 지점은 봉원교회일 때가 많다.
“정림에 들어온 후 처음 수행한 프로젝트가 봉원교회였어요. 건축가로서 덜 무르익었을 때라 서툴렀지만 그때만의 말랑말랑했던 감성이나 열정만큼은 두고두고 초심으로 데려가 주죠.”
당시 기교를 부리지 않으면서 빛을 머금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그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던 그는 이후 건축설계에서 ‘사람’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았다. ‘사람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것’을 좋은 건축의 첫 번째 조건으로 내건 그는 설계에 앞서 그 공간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다. 그의 설계도는 건축 용어와 선으로 변환한 유저들의 이야기인 셈. 실제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이나 이대서울병원 등 병원 설계를 할 때도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는 그는 같은 이유로 교정시설을 설계한다면 교정공무원들의 디테일한 일상과 생각을 듣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약자들을 위한 치유의 공간 그 연장선에 있는 교정시설

교회와 병원 등 몸이든 마음이든 기댈 곳이 필요한 이들의 공간을 주로 설계해 온 그는 교정교화가 필요한 이들이 머무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교정시설 또한 그 연장선에 두었다. 이쯤 되면 임진우 건축가가 생각하는 교정시설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런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특유의 손맛에 상상력을 얹어 가상의 설계도 하나를 스케치 해낸다.
“과밀을 피할 수 없는 현실상 고층형 교정시설이 전제될 때, 어떻게 자연을 끌어들일지 또 밀폐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수용자들의 활동력을 어떻게 증진시킬지에 대한 공간 설계가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최소한의 액티비티가 가능한 정원과 옥상에 햇볕을 쬘 수 있는 루프톱 가든을 생각했고요. 자연 채광과 환기는 사람의 심리와 매우 긴밀한 연관 관계에 있으므로 다공질 건물로 원활한 자연 채광과 환풍이 필요하겠지요? 다소 엉뚱한 생각이지만 각 건물을 서랍식으로 만들어 바깥으로 빼냈을 때 햇볕을 충분히 받고 환기를 시켜 주면 교정교화에 이로운 심리 형성과 더불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확산 방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그는 건축가가 건축설계를 통해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의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듯 수용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오래 머물며 교정교화를 돕는다는 점에서 교정공무원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했다. 아울러 30년 넘게 정림의 건축가로 일할 수 있었던 동력이 의미와 재미였음을 강조하며 교정공무원들도 이 두 가지가 상호 보완된 삶을 살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자면 일 외적으로 자신만의 여백을 만들고 리셋할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는 그는 이른바 ‘부캐’인 칼럼니스트이자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를 통해 책을 펴내고 여러 번의 개인전을 열었는가 하면 올해로 7년째 서울시 달력에 글과 그림을 재능 기부해 오고 있다.
“글과 그림이 매개가 돼 건축가란 직업에 대한 친밀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이런 활동은 꾸준히 이어나가려고 해요. 아울러 30년 넘게 활동해 온 건축가로서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후배 양성을 위해서도 좀 더 노력할 생각입니다.”
건축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동시에 직면한 현실을 섬세하게 살피는, 말하자면 망원경과 현미경을 다 가진 임진우 건축가. 앞으로도 그가 의미와 재미 속에서 울울창창하게 가꿔 갈 건축의 숲을 기대해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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