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재만(조선비즈 증권팀장)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후 대비를 잘하지 못하는 편이다. 자영업자뿐 아니라 월급쟁이도 그렇다.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올 때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가 퇴직과 동시에 본인의 자금 사정이 얼마나 열악한지 그 현실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자녀의 결혼과 병원비, 경조사비 등으로 퇴직과 동시에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공무원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2019년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2018년 공무원 총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의 43.5%는 공무원 연금으로만 노후 대비를 하고 있다. 문제는 2016년에 이루어진 공무원 연금 개편으로 공무원 연금이 예전만큼의 위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점에 있다. 정부에 따르면 2016년 임용한 공무원은 30년 재직 후 은퇴 시 9급 공무원은 134만 원, 7급 공무원은 157만 원 수준의 연금을 수령하게 된다. 더구나 2033년부터는 연금 수령 나이도 65세부터로 조정된다. 공무원은 60세에 퇴직하니 5년간 소득 절벽을 맞이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최소한 이 틈새를 메우는 식의 사적 연금은 구성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공무원은 사적 연금이 필요 없었지만…
사적 연금이란 은행과 보험, 증권사 등 민간 금융회사의 연금 상품을 말한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연금 가입률 자체가 20%대로 낮지만, 공무원은 더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분리과세 한도가 600만 원으로 적어 자칫 잘못하면 소득공제 혜택보다 종합소득세 부담이 컸고, 이로 인해 사적 연금에 가입해 봐야 손해만 본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공무원 연금만 믿을 수는 없으니 노후 대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간혹 공무원도 세액공제를 받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물론 공무원도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을 합쳐 700만 원을 납입하면 13.2~16.5%의 투자금을 돌려받는다. 그러므로 연말정산 효과도 누리고, 노후 대비를 하기 위해 연금저축에 가입하기를 권한다. 참고로 사적 연금은 투자 원금과 투자 이익을 합쳐 3.3~5.5%의 연금소득세를 뗀다. 총금액을 10년 혹은 그 이상으로 조정해 나눠 수령하는 방식이다. 연금의 연 수령액이 1,200만 원을 넘으면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이 되는데, 이 기준에 걸리지 않도록 총 수령 기간을 조정하는 것이 좋다.
연금저축 가입자의 70%는 보험사를 선택, 이유는?
대부분의 일반 직장인은 사적 연금에 가입하더라도 보험사의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한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2019년 기준으로 전체 연금 중 연금저축보험 가입자 비율이 73.6%를 차지한다. 연금저축신탁(은행)은 12.2%, 연금저축펀드(증권사)는 10.1%다.
보험이 왜 이렇게 압도적일까? 이는 바로 ‘엄마 친구’ 효과다. 우리나라는 보험 판매의 대부분이 설계사 채널로 이루어지는데, 기혼 여성 설계사 비중이 70%대에 이른다. 이들은 평소 매의 눈으로 동향을 살펴보다가 지인의 자녀가 취업했다는 점만 확인하면 곧바로 연금저축보험 계약서를 들이민다.
그런데 판매자가 적극적으로 판다는 것은 판매자에게 큰 이익이 된다는 점이고, 돌려 말하면 가입자가 그만큼 불리하다. 연금저축보험 또한 마찬가지다. 2019년 연금저축보험 수익률은 생명보험사가 1.84%, 손해보험사가 1.50%에 그쳤다. 2018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각각 1.79%, 1.36%에 머물렀다. 이는 사실 당연한 것이, 보험사는 정해진 이율로만 수익을 지급한다. 더구나 연금저축보험에 가입하면 월 납입금의 9~15%가 매해 사업비 명목으로 사라진다. 이 자금이 바로 엄마 친구인 설계사와 설계사가 소속된 보험판매대리점(GA), 보험사 등으로 넘어간다. 가입자가 손에 쥐는 것이 은행, 증권사에 비해 턱없이 적다.
증권사 지점 가지 않아도 연금 이전 신청 가능
필자는 증권사의 연금저축펀드에 가입하라고 권하고 싶다. 연금저축펀드는 2019년 10.50%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2020년에는 이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대로 연금저축신탁과 연금저축보험은 기준 금리 인하로 인해 수익률은 더 나빠졌을 것이다.
증권사 상품은 위험할 것 같아 무섭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보수적이라고 생각된다고 해도 증권사를 고르라고 권하고 싶다. 보수적일수록 평상시에는 눈에 잘 안 띄는 연금저축만이라도 공격적으로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월 단위로 적립식으로 투자하면, 급변동하는 장세여도 비교적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다.
문제는 하필이면 내가 연금을 수령하는 시기에 금융 위기가 터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 미국에서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2009년 은퇴자들이 날벼락을 맞은 전례가 있다. 이런 점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 타깃데이트펀드(TDF)다. TDF는 투자자의 은퇴 시점을 목표 시점(target date)으로 해 생애 주기에 따라 펀드가 포트폴리오를 알아서 조정하는 자산 배분 펀드다. 은퇴 2~3년 전부터는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연금저축펀드의 또 하나 장점 중 하나는 본인이 직접 운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만 매수할 수 있는 상품은 상장지수펀드(ETF)로 제한된다. ETF란 펀드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든 상품이다. 삼성전자를 사고 싶다면 삼성그룹 ETF, 해외 주식인 테슬라나 구글을 사고 싶다면 나스닥100 ETF, 4차 산업혁명 ETF 등을 고르면 된다. 다만 평상시에 주식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면 전문가에게 맡길 것을 추천한다.
지금 만약 연금저축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해도 증권사 상품으로 넘어갈 수 있다. 증권사를 찾아 연금 이전 신청을 하면 된다. 이는 요즘은 비대면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절대로 연금저축보험을 해지하면 안 된다. 일단 상품을 해지하면 여태까지 받았던 공제 혜택을 토해 내야 한다. 그리고 보험사 상품은 보통 납입 7년 미만이면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원금이 보존되는 때에 맞춰서 연금 이전 신청을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 하나. 연금저축은 보험이든 신탁이든 펀드이든, 5년 이상 유지율이 60%에 그친다. 10년 이상 유지율은 30%밖에 안 된다. 그만큼 손해를 보고 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중간에 환매하면 세액 공제 혜택을 모조리 반납해야 한다. 연금을 중도 환매하지 않도록 꼼꼼한 자금 관리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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