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Vol.536 세상을 지키는 따뜻한 사람들 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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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아름다운 이유

신재옥(장흥교도소 교위)
대나무숲 일기 1
‘기우(杞憂)’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기(杞)나라 사람의 걱정’이라는 뜻으로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하며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말이다. 지금 이 단어가 내 모습을 정확하게 말해 주고 있다. 코로나19로 생활 반경은 반 토막이 났고,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행여나 코로나19에 노출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 와중에 가계 대출과 집값 등 조그마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계속 괴롭힌다. 그러다 보니 불안, 초조, 조급함으로 하루가 다르게 나약해지는 나를 마주하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친한 선배가 다가와 “재옥아, 낙하산과 얼굴은 펴져야 산다는데, 너는 왜 그리 오만상을 하고 있어? 무슨 큰일이라도 났어?”라고 물었다.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요즘 쓸데없는 걱정에 빠져 산다고 실토했다. 그러자 선배는 웃으며 “걱정을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이런 말 못 들어 봤어? 주위가 답답하고 복잡할수록 걱정일랑 접어 두고 네 자신에게 집중해 봐”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세상 걱정을 내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것 같았으면 걱정이 없어야 맞다. 그래서 선배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나에게는 집중할 그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어릴 적 초등학교에 다니던 길에 커다란 수족관이 있었다. 수초 사이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물방울, 그 사이를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얼마나 마음이 편안했던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을 잃고 지켜보곤 했다. 그래서 때로는 지각해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그때를 떠올리며 나의 조급함과 걱정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시쳇말로 ‘물생활’이란 것을 시작하게 됐다. 물생활이란 물에 사는 수생생물을 관상이나 반려의 목적으로 기르거나 이용해 아름다운 수경을 연출하는 행위이다. 쉽게 말하면, 그냥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는 것이다.

시작은 너무나 초라했다. 뜬금없이 가져온 어항에 가족들의 싸늘한 눈초리와 ‘이게 뭐야?’라는 분위기가 나를 힘들게 했다. 게다가 물고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얼마 안 가 물고기들이 폐사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 뒤로 원인 분석을 해 다시 꾸미고 또다시 꾸미고…. 이렇게 4개월을 하다 보니 이제 제법 볼만하게 됐다. 나름 뿌듯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일명 ‘물멍’(물을 보며 멍하게 있는 상태)을 하고 있노라면, 신기하게도 그 많던 걱정거리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편안한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내가 편안해지니 가족들도 편안해지는 것이다. 처음 어항에 구피와 풍선몰리라는 어종을 키웠는데 당시 아내의 반대도 심했고, 아이들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어항이 수족관이 되고, 수족관에 어종이 늘어나게 되고, 건강한 물고기가 많아지자 점점 아이들의 관심과 아내의 지지를 받게 됐다. 어느 날은 아내가 왜 물고기 밥을 안 주냐며, 직접 먹이를 주는 일도 있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신기하고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해 주는 것이다. 그때 아내의 인정이 나의 자존감을 한순간에 높이는 것을 느꼈다. 아무튼 아내의 강력한 지지로 현재는 수족관이 3개로 늘어나 있다. 그리고 가끔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 보면 수족관을 중심으로 아내도 아이들도 지나다니며 물멍을 하면서 나름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 시국에 아이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리고 아내 또한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동안 나의 마음이 불편하다 해서 가족들에게 짜증 부렸던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당신 안에 꽃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아름다운 문구가 있다. 사실 나는 이 문구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물생활을 하면서 내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게 됐다. 풀이해 보자면 꽃은 그냥 꽃이다. 산도 그냥 산이며, 바위도 그냥 바위이듯이 꽃도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의 마음에는 무수히 많은 마음이 존재한다. 선한 마음, 악한 마음, 심술, 동정, 아름다움, 추함 등등…. 그런데 꽃이라는 매개체를 보았을 때 아름다움이란 마음이 툭 하고 발현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내 안에 아름다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답게 보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현되는 마음이 온전히 내 삶을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처럼 쉽게 바뀌는 것이 없다. 내가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이면 불쾌한 감정 속에 빠져 있다가도,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쾌한 감정으로 순식간에 뒤바뀐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거리로 나를 괴롭히던 그 진흙탕 같은 상황에서 나는 꽃을 보았고, 편안함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과정으로 볼 때, 내 마음속의 꽃만 찾아도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꽃을 찾으러 꽃밭으로 가야만 한다. 가만히 앉아 꽃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감나무 아래서 홍시가 내 입속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힘들고 지칠수록 자신의 꽃을 찾아 꽃밭으로 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여기서 꽃은 누군가에게는 수족관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 권의 책 혹은 한 편의 영화일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해서 내 안에 꽃밭을 가꾸기가 매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아니면 금전적인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자신만의 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번 일로 내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인지 깨달았다. 한마디로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은 내가 나를 낭비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수록 꽃은 우리에게 쉽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내 주위를 따뜻하게 해 줄 것이며, 나아가 나와 연결된 모든 사람이 따뜻해질 것이다. 인류는 지금 코로나19라는 낯선 환경에 처해 있다. 부디 꽃이 아름다운 이유를 내 안에서 찾아, 낯선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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