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긴 인연을 이어 주는 말하기 방법

 박민근(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소장)
오랜만에 연락하는 이유
정현종의 시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에는 “나는 가끔 후회한다 / 그때 그 일이 /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라는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당시에는 모르다가 지나고서 소중함을 알게 된다.
헤어진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연락이 끊긴 관계를 아쉬워하는 데는 이런 심리가 작용한다. 내게 상담을 받던 소정 씨는 몇 년간 연락이 끊긴 친구 이야기를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그 친구가 진짜였다’ ‘자신의무심함으로 그 친구와 멀어진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나는 용기를 내연락해 보라고 했다.
하지만 소정 씨는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연락해서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그런 것이기도 했다. 가끔 관계가 끊어졌던 사람에게 연락이 온다. 정수기 같은 걸 사 달라는 황당한 부탁일 때도 있고, 뜬금없이 교회는 어디 다니는지 묻기도 한다. 가장 싫은 상황 중 하나이다. 무엇을 부탁하기 위해 하는 연락이라면 실낱같던 관계마저 끊기기 쉽다. 그러니 목적을 갖고 연락할 때는 이런 결과를 예상해야 한다. 아무리 선의를 가졌더라도 이런 연락을 반길 사람은 많지 않다. 물론 목적이 없는 경우라면 훨씬 쉽다. 그저 안부를 묻고 싶어,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고 싶은 것이라면 몇 가지만 잘 지켜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오랜만에 연락할 때 처음 하는 말

연락이 끊긴 사람에게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사실 이 질문부터 답해야 한다. 서운할 수도 있다. 그 사람이 내가 소중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괘씸할 수도 있다. 이미 정나미가 떨어진 경우도 있다. 물론 ‘서로 바쁘다 보니 그럴 수 있는 일이지’ 하며 쿨하게 생각할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오랜만에 하는 연락이라면, 게다가 그리된 데에 내 실수가 더 크다면 꼭 사과나 용서의 말이 먼저여야 한다. 거기다 그렇게 된 사정을 덧붙이는 것도 필요하다.
“그때 연락한다고 해 놓고 미안해. 내가 무심했어! 많이 섭섭했지? 사실 내가 조금 힘든 일도 있었고 연락하기 쉽지 않았어. 변명 같지만 사정이 있었어.”
그리고 상대의 반응을 찬찬히 살피기 바란다. 나의 연락이 못마땅할 수도 있고, 그저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반가울 수도 있다. 이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연락을 한 내 진심을 전하는 일이다. “네 생각이 자주 났었어. 보고 싶었어. 지나고 보니 너처럼 좋은 친구도 없었는데.”
물론 이는 모든 사람에게 통용되는 방법은 아니다. 성별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 또 현재 상황에 따라서 달리할 부분도 많다. 어쨌든 끊어진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평소 자주 건너던 개울의 징검다리를 떠올리면 된다. 개울 이편과 저편 사이를 잇던 징검다리의 돌 몇 개가 어쩌다 빠져 버린 것이다.
그러니 낯설고 어색한 게 당연하다. 그간의 사정을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이, 마음이 변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상황에 변화가 생겼을 수도 있다. 소정 씨의 친구도 큰 변화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그즈음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 친구도 소정 씨에게 결혼식에 오라고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두 사람은 좀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대화에도 단계가 있다

예전 관계만, 그때의 그 사람만 생각하고 말을 건넸다가 이어진 관계가 끊기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말조심은 항상 필요하지만, 오랜만에 연락하는 것이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말할 때처럼 말을 가릴 필요가 있다. 대화에도 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더 능숙한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존 파월(John Powel) 신부는 대화를, 내용과 그 깊이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먼저 1단계는 상투적인 안부 묻기이다. “요즘 바깥에다니기 힘들지?” “잘 지내시나요?” 사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말이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꼭 나누어야 할 말이다. 2단계는사실과 보고의 대화이다. “얼마 전 갑수 씨도 결혼했다고 하던데.”
“그때 하던 일은 계속하고 있나요?” 상대의 관심사에 부응한다면 이런 대화는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3단계 대화로 나아가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단, 처음부터 상대의 신상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 일은 자제하는 편이 낫다. 탐색 단계를 거치면 본격적인 대화로 진전된다. 3단계는 단순히 정보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말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때 우리 함께 갔던 카페의 커피가 참 맛있었지?” “어제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무척 안타깝더라.” 이때부터 관계의 보호막인 친밀감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서로가 느낌, 생각, 감정, 가치 지향을 주고받으며 친밀해지는 것이다. 정서적 표현은 친밀해지는 지름길이다. 4단계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대화가 필요한 이유기도 하다.
“요즘 들어 부쩍 외롭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 “최근에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 존 파월 신부는 이를 ‘가슴의 대화’라고 칭한다. 서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인간관계 안에 상대를 들이는 대화이기 때문이다. 이 단계부터 위로와 공감, 감정이입, 동일시, 격려와 칭찬 같은 긍정적인 감정 교류가 오간다. 상대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다면 내게 마음을 열었다는 뜻이다. 그때는 이렇게 답하면 된다.
“그랬군. 어쩐지 말에서 힘든 기색이 느껴졌어. 실은 나도 몇 가지 힘든 일이 있었어. 제일 걱정은 ○○○이야.” 정서적 소통은 피상적 관계가 질적인 관계로 나아가게 돕는다. 이때는 양도, 질도 중요하다. 오래 대화해도 정서적 소통이 부족하면 늘 제자리이고, 서로 바빠 대화 시간이 부족해도 탈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5단계, 최상의 대화가 가능해진다. 서로 공감하며 자신의 감정, 가치, 생각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대화이다. 내밀한 속내까지 교류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다. 예전에 잘 알던 사람이라면 빠르게 대화 단계가 진전될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불편해한다면 때때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3단계부터는 전화나 문자, 메신저보다는 직접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안전하다. 상대의 표정과 반응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으면 오해를 사거나 말실수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연락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상대에게 바라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좋다. 그 사람을 내 인간관계의 어디까지 들일 것인지 고려하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어려운것은 친해지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관계가 무시로 바뀌고, 뜻대로 조절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