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권미선(라디오 작가)
작가 밀란 쿤데라는 <시인이 된다는 것>에서 말합니다. “시인이 된다는 것은 끝까지 가 보는 것을 의미하지. 행동의 끝까지,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절망의 끝까지. 그다음 처음으로 셈을 해 보는 것, 그 전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
작가는 끝까지 가 보지도 않고 삶이 이렇다 저렇다 미리 계산하거나 포기하지 말라고 전합니다. 물론 이것은 시인에게만 필요한 덕목은 아닙니다. 인생의 어느 한 시기의 결과만을 두고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라는 것, 마음을 다해서 끝까지 한번 해 보라는 것, 그 끝에 어떤 것이 있을지는 거기까지 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니까요.
여기, 재밌고 독특한 방법으로 끝까지 한번 가 보기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면 실패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컸던 이 사람은 그걸 극복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서 도전한 방법은 거절당하기. 거절의 끝에는 뭐가 있을지, 그는 최대한 많이 끊임없이 거절당하기로 합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엉뚱하고 황당한 부탁을 하는 거죠.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리필하기. 경찰에게 경찰차를 운전하겠다고 말하기. 호텔에서 무료로 묵어 보기. 남의 집 정원에서 축구하기. 이렇듯 일부러 거절당할 일만 골라서 부탁한 이 남자, 실제로 많은 일을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거절을 당할 때마다 거절과 실패라는 것이 그렇게 두렵고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게다가 남자의 황당한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는 사람들도 만나게 됩니다. 절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일도 실제로 해 보니까 달랐던 거죠. 남자는 실패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 가면서 깨닫게 됩니다. 어떤 일이든 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는 것, 그러니 미리 포기하지 말고 도전해 보자는 것, 그 도전 앞에서는 거절당할 용기도 필요하다는 것, 일이 잘 안돼서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것.
새로 시작할 기회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적고, 마음이 열린 사람에게 더 잘 보일 텐데요. 절망의 끝에서 좌절과 포기 대신에 또 다른 길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 요리사로 성공해 승승장구하던 이 사람. 그런데 암에 걸려서 미각을 잃고 맙니다. 요리사로서 맛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죠. 하지만 그는 요리사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좌절하는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합니다. 비록 혀의 감각은 사라졌지만, 음식 재료에 대한 감각과 기억력은 그대로였습니다. 맛을 잃어버렸기에 오히려 기존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롭고 독창적인 메뉴에 더 도전할 수 있었죠. 그런 노력 끝에 그는 요리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최고 요리사 상도 받게 됩니다. 자신이 잃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 그리고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살면서 장애물을 만났을 때, 끊임없는 도전으로 그걸 뛰어넘는 사람이 있지만 가로막힌 벽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젊은 시절, 한때의 잘못으로 방황하며 힘들게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직장을 구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꼬리표 때문에 지원한 모든 곳에서 거절당했죠. 하지만 그를 향해 문을 활짝 열어 주고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게 해 준 곳이 있습니다. 직원을 뽑을 때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받지 않는 이 회사. 나이나 성별, 학력이나 경력은 상관없이 채용은 오직 선착순으로만 합니다. 일하고 싶은 사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이곳은 빵을 만드는 회사, 그레이스톤 베이커리입니다.
“우리는 브라우니를 만들기 위해서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원을 고용하기 위해서 브라우니를 만듭니다.” 회사의 경영 철학에서 알 수 있듯이 회사의 존재 이유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도 기회조차 잘 주어지지 않았던 사람들, 그들에게 이곳은 단순히 일자리가 아니라 인생을 바꾸는 기회가 됐습니다.
삶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마음이 쉽게 가닿는 곳은 좌절과 포기입니다. 그런데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에서 자라는 식물, 웰위치아도 그렇습니다. 비가 오지 않는 사막에서 웰위치아가 살아가는 방법은 안개입니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바다에서 피어오른 안개를 온 힘을 다해 끌어모아 만든 한 방울, 그 한 방울 한 방울로 메마른 모래 위에서 살아남고 꽃도 피웁니다. 삶은 때로 안개를 모아서 물방울을 만드는 것 같고, 메마른 모래 위에서 꽃을 피우는 것처럼 눈물겹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애쓰는 사람에게 삶은 등을 두드려 줄 겁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가 보라고. 그러면 새로운 길이 보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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